이재명 대통령이 11일 군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모든 전선에서 가동되던 확성기 방송이 이날 오후 2시부로 멈췄다.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단거리 미사일 무더기 발사, GPS 교란 공격 등에 대한 대응 조치로 지난해 6월 재개했던 것이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괴소음 방송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측이 이날 선제적으로 방송 중단 조치에 나섰다. 남북 간 긴장 완화를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통일부는 민간 단체에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했고,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끈 것이다. 이 같은 대북 유화 제스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날 “북한 정권은 도발 중단 약속조차 없는데 대북 확성기를 알아서 끈 것은 스스로 안보 손발을 묶는 것”이라고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는 남북 관계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께 약속드린 바를 실천했다”고 했다.
◇李, ‘9·19 합의’도 복원 나설 가능성… 국힘은 “스스로 안보 손발 묶어”
북한과 사전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9·19 군사 합의를 복원하고 대북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이날 오후부터 전 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우리 군은 지난해 말부터 이동식 확성기 방송은 중단하고 20여 대의 고정식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날부로 고정식 확성기 방송도 모두 끈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중단됐지만 이날 기준 북한은 대남 확성기 방송을 계속해서 실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9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도발이 반복되자 맞대응 카드로 약 6년 만에 대북 확성기를 꺼냈다. 대북 확성기는 1963년부터 활용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이다. 방송은 한류 관련이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된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성기 방송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우리 군은 지난해 11월 28일을 마지막으로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이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이동식 대북 확성기 10여 대 운용은 중단하고 고정식 대북 확성기 20여 대만 가동해왔다. 이날 고정식 대북 확성기 가동도 모두 멈추면서 군은 “‘중단’이 아니라 ‘중지’”라며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대북 방송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7월부터 대남 확성기를 활용해 남측으로 쇠 긁는 소리와 귀신 소리 등 기괴한 소음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이날 “이제 북한이 대남 소음 방송을 중지할 차례”라고 했다. 우리 측에서 선제적으로 손을 내밀었으니 북한이 화답할 차례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한반도 긴장 완화’ 공약 실천에 나서면서 대선 유세 기간 주장했던 ‘9·19 남북 군사 합의 복원’도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9·19 군사 합의를 전면 효력 정지했다. 9·19 군사 합의는 군사분계선 인근 기동 훈련과 실사격 훈련을 금지해 우리 측 군사 대비 태세에 족쇄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9·19 남북 군사 합의 복원과 관련해서도 이재명 정부가 선제적 조치에 나설 수 있다”며 “접경 지역 기동훈련 및 실사격 훈련 중지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군 소식통은 “현재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주장하는 등 9·19 군사 합의 체결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북측이 어떻게 반응할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