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미국 알래스카 아일슨 공군기지에서 벌어진 KF-16 비상 탈출 사고는 거리가 짧은 유도로를 활주로로 착각해 잘못 진입한 조종사 실수로 벌어졌다고 공군이 12일 밝혔다. 활주로 길이의 3분의 1에 불과한 유도로(주기장에 있는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할 때 이용하는 도로)를 활주로로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11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훈련중이던 KF-16 전투기가 추락해 파손돼있다. /페이스북

공군은 “3기로 이뤄진 KF-16 편조가 활주로가 아닌 유도로로 잘못 진입했다”며 “미 공군 관제탑이 1번기가 유도로에서 이륙하는 것을 보고 2번기에 이륙 취소를 지시했지만 2번기는 정지 거리가 부족해 비상 탈출했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1번기는 길이가 약 3000ft(약 1㎞)인 유도로를 길이 11000ft(3.3㎞)인 활주로로 착각해 잘못 진입했다. 2·3번기는 길을 잘못 든 1번기를 그대로 따라 유도로에 진입해 이륙을 준비했다. KF-16은 약 640m만 있어도 이륙이 가능한 기체다. 유도로 길이로도 이륙 거리는 충분했다.

실제로 1번기는 사고 없이 이륙했다. 현지 미 공군 관제탑이 1번기(단좌)가 유도로에서 이륙하는 것을 보고, 2번기(복좌)에 이륙 취소를 지시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2번기는 이륙을 위해 속도를 내던 이륙 취소 명령에 출력을 줄였다. 하지만 속도가 빨리 줄어들지 않아 풀밭까지 진입했고, 이후 화재가 발생하며 조종사 2명이 비상 탈출했다고 한다. 2번기 조종사는 활주로라고 착각해 출력을 줄여 사고기를 멈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3번기는 이런 상황을 지켜본 뒤 이륙하지 않았다.

공군은 해당 부대가 사전에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아일슨 기지 구조도 숙지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3번기 조종사 4명은 모두 활주로를 유도로로 착각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공군의 전투기 사고는 3번째로, 모두 조종사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공군은 주장하고 있다. 군 일각에서는 조종사의 기강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조종사 선후배 간에 철저하게 군기를 잡으며 도제식으로 가르쳤는데 군 문화가 바뀌면서 예전 같은 군기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번 사고는 1번기의 실수를 2번기가 그대로 반복했다는 점에서 지난 3월 포천 오폭 사고와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천 KF-16 오폭 사고 당시 1번기가 잘못된 좌표에 폭격을 했고, 2번기는 1번기 지시에 따라 같은 지점에 오폭했다. 이번 사고에서도 1번기가 유도로를 활주로로 착각하고 진입하자 2~3번기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따랐다고 한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만든 F-16은 대당 가격이 1000억원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KF-16은 이를 국내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기종이다. 사고기는 항전장비등을 업그레이드한 KF-16U로 알려졌다. 공군은 현재 사고기 파손 상태를 파악해 다시 임무 수행이 가능할지를 판단하고 있다.

이영수 공군 참모총장은 지난 4월 ‘100일의 약속’이라며 안전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조종사 과실에 의한 전투기 파손 사고가 벌어졌다. 공군 관계자는 “통렬한 반성과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를 통해 유사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만 미군 관제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KF-16 편대의 1번기가 활주로가 아닌 유도로로 잘못 진입했는데도 미군 관제탑에서 이륙을 승인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군 측은 “미측에서 관제사의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