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낙 전 영국 총리가 2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이정훈 연세대 국제대학원장과의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장련성 기자

리시 수낙 전 영국 총리는 21일 “세계 각국에서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던 민주주의의 개념과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며 “우리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정부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수낙 전 총리는 이날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열린 이정훈 연세대 국제대학원장과의 대담에서 “독재·권위주의 정부에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수낙 전 총리는 그 이유에 대해 “영국 내부적으로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보다 나은 생활 수준을 바라고 밝은 미래를 원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느끼는 이가 많다”며 “외부적으로는 중국, 이란, 북한, 러시아 등 독재·권위주의 국가들이 끊임없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전형적인 국가가 하는 일이 아닌 이상한 일을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도 마찬가지”라며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은 협력하고 경제적 거래를 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했다. 수낙 전 총리는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을 언급하면서 계정 일부가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취지로 우려했다.

수낙 전 총리는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덕목 3가지로 정치적 신념과 용기, 존경받는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 의식, 회복 탄력성을 꼽았다. 그는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도 할 줄 아는 정치적 신념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사랑받거나 신뢰받는 지도자,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존경받는 지도자를 목표로 삼기를 권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든 의견 표명이 가능한 소셜미디어 시대에 리더를 하는 건 쉽지 않고 지도자를 향한 존경심도 많이 떨어진 시대지만 중요한 건 스스로 회복 탄력성을 갖는 것”이라고도 했다.

수낙 전 총리는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를 뒀다. 그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정치학을 선택했을 때 도대체 정치를 공부해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굉장히 많이 우셨다”며 “어릴 때 어머니 약국에서 일하면서 자전거 타고 약 배달을 하며 만난 동네의 고령 환자들을 통해 부모님이 지역사회에 기여하신 부분이 크다는 걸 느낀 이후 현실 정치를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수낙 전 총리의 대담을 듣기 위해 젊은 세대 수백 명이 행사장을 꽉 채웠다. 수낙 전 총리는 한국 젊은이들을 향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성공 비결을 종이 한 장에 써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쓴 단어는 ‘집중(Focus)’이었다”며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IT·원자력·교육 강국인 만큼 집중하고 노력해서 여러분의 명석한 두뇌를 탑재시키면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바뀔 것이니 그 기회를 포착하라”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AI 시대에는 100년간 이뤄진 변화가 10년 만에 이뤄질 수도 있고 여러분은 일생 기간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는 세상에서 그 변화를 느낄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라며 “항상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목표에 ‘집중’하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낙 전 총리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그는 “총리 재직 시절 한국인 요리사가 쌈장과 김치를 영국 음식과 함께 준비한 적이 있는데 두 딸이 너무 좋아했다”며 “한국에 온다고 하니 10대 딸들이 올리브영에 꼭 들러야 한다며 화장품 구매 목록을 적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K팝, K푸드, K뷰티 등 전 세계가 인정하는 소프트 파워 강국”이라고 했다.

인도계인 수낙은 만 42세 때인 2022년 총리에 올라 2024년까지 재임했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총리, 힌두교 출신 총리이자 1812년 로버트 젱킨슨(만 42년 1일)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였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2022년 재무 장관 재직 당시에는 영국 최초의 고용 유지 지원금 제도를 도입해 대규모 실업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영국 북동부의 리치먼드 및 노샐러튼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다.

☞리시 수낙

인도계인 리시 수낙은 만 42세 때인 2022년 총리에 올라 2024년까지 재임했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총리, 힌두교 출신 총리이자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였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2022년 재무 장관 재직 당시에는 영국 최초의 고용 유지 지원금 제도를 도입해 대규모 실업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