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방공망이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적인 ‘소나기 포격’에 뚫리자 한국의 대북 정찰·대공 방어 전략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9·19 군사 합의로 육·해·공 방어 전선이 취약해져 현 상태로는 북한이 소나기 포격에 게릴라식 침투전을 펼칠 경우 막아내기 어렵다. 9·19 합의는 선제공격하는 쪽에 유리하고, 막아야 하는 입장에선 불리한 구조적 한계도 갖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9·19 군사 합의는 군사분계선(MDL) 기준 5㎞ 내에서 일체의 포병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의 야외 기동 훈련을 전면 중지하고, 비무장지대(DMZ)의 감시 초소(GP) 11개를 우선적으로 철거하고 단계적으로 모든 전선의 GP를 완전 철수하기로 했다. 공중에서는 MDL 기준 서부는 20㎞, 동부는 40㎞ 상공에서 전투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군사 활동을 금지했다. 해상에서도 북방한계선(NLL) 이남 85㎞까지 내려오는 덕적도부터 NLL 이북 50㎞인 북한 초도까지 포문을 폐쇄하고 해상 기동 훈련, 포격 활동을 제한했다.

하지만 9·19 합의로 GP를 철거하자 북한의 지상 침투뿐 아니라 DMZ 인근에서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소형 무인기 감시망이 허술해졌다. 북 도발을 억제하는 한미의 다연장 로켓 발사 시스템의 배치선도 후방으로 밀렸다. GP는 남북 간 짧게는 수백m, 길게는 1㎞여 거리를 두고 DMZ 내 지상·공중 활동을 각종 장비로 감시한다. GP에는 1개 소대가 약 3개월간 주둔하며 대남 침투에 대응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GP 철수로 북한의 침투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작년 초엔 9·19 합의로 병력을 뺀 369GP 일대에서 월북 사건이 벌어져 ‘GP 철거 지역’이 월남·월북 루트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DMZ는 지뢰 매설 지역이 많아 GP를 유지하며 장병들이 지뢰 없는 수색로를 장기간 체득하지 않으면 유사시 신속 대응에 지체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12월 말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는 소형 무인기 5대를 서울 중심부까지 날려 보내면서 최전방에서의 육안 및 재래 장비를 통한 감시의 중요성이 커졌다. 하마스식 낙하산 침투도 레이더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픽=김성규

9·19 합의로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때문에 북한의 로켓·미사일 동향을 사전 탐지하는 능력이 저하된 점도 문제다. 북한은 최전방의 화력 무기를 한국군이 바라볼 때 산의 뒷면인 북쪽 기슭에 놓고 있다. 산악에 갱도를 파 그 안에 넣어두기도 한다. 북한의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해 대응하려면 MDL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정찰 비행을 해야 한다. MDL에서 멀어질수록 산 너머를 보지 못하는 ‘정찰 사각지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각을 줄이려 정찰 고도를 높이면 정찰 해상도가 떨어져 면밀한 관찰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9·19 합의로 MDL 기준 2㎞인 DMZ 직전까지 가능했던 정찰이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서부는 20㎞까지 뒤로 밀리면서 MDL 이북 50㎞의 1000m 높이 산 등 지형물 뒤편으로 17.5㎞의 사각지대가 생겼다. 북한이 이 위치에 미사일을 대거 배치해 놓고 발사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군은 9·19 합의의 해상완충구역으로 백령도 등 서북 도서 방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병 훈련에 제한이 생기면서 해병대가 포 점검 및 사격을 위해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육지까지 옮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백령도 등은 완충구역에 속하기 때문에 배치한 포가 정상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해병대원들의 포 운용력을 훈련시키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이로 인해 2018~2022년 4년간 연평도·백령도 포 이동비로만 100억원이 지출됐다. 군사 합의가 아니라면 안 써도 될 돈이었다. 특히 해병대와 해군은 북한의 예상 침투로에서 해상 기동 훈련을 하고 싶어도 지난 5년간 하지 못했다. 북한 김정은은 최근 서해 해군 사령부를 방문하고 해군력 강화를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군은 9·19 합의에 ‘눈’이 가려지고 ‘손발’이 묶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위원은 “백령도는 김정은이 점령하고 싶어 하는 제1의 서해 도서”라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한 것과 같이 북한도 한미가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회색 지대’를 노리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