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 믄 토크즈 주즈 토크산 예킨쉬 즐르 디플로마티얄록 바일라느스 오르나간난 배르, 예크 작트 카름카트나스 손그 오트즈 즐다 카르큰드 다므드….” (1992년 수교 이래 지난 30년간 양국 관계가 빠르게 발전해왔습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한국과 카자흐스탄 외교장관 확대 회담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발언 도중 카자흐어를 사용해 이같이 말했다. 박 장관은 앞선 단독 회담에서도 지난 4월 취임한 무라트 누르틀례우 부총리 겸 외교장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뒤이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도 취재진을 향해 “샐례멧스즈볘(안녕하세요)”라며 카자흐 정부가 우리 측에 배푼 환대에 사의를 표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인구 1900만명의 카자흐스탄에서 공용어는 카자흐어와 러시아어 2가지다. 오랜기간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통치를 받았던 경험 때문에 수도 아스타나(구 누르술탄)의 경우 90% 이상의 시민이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카자흐어는 소련이 무너지고도 6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공용어로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정부가 카자흐어 보급과 사용 확대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고,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러 여론이 고조되면서 이같은 노력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카자흐스탄 엘리트 계층에서도 러시아어는 잘하는데 카자흐어는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이 발언의 상당 부분을 카자흐어로 한 것에 대해 현지 당국자들이 고마움을 표시해왔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어 찾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TPO(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우즈벡어를 구사했다.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우즈베키스탄 내 분위기를 간파한 맞춤 외교를 구사한 것이다. 우즈벡어도 소련 해체 이후에야 공용어로 지정됐다. 박 장관은 타슈켄트 국립동방대 강연에서 “여러분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관계를 이끌어나갈 주인공” “관계 발전을 위한 여러분들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해 현지 대학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외교장관 회담 때도 발언을 하며 우즈벡어를 혼용했는데 사이도프 외교 장관을 비롯한 우즈벡 당국자들과 취재진들이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았던 박 장관은 외교 무대에서 자신의 언어적 역량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인도 방문 당시 외교장관 회담에서 힌디어로 모두 발언을 해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일종의 ‘바이럴(viral) 컨텐츠’가 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박 장관이 독일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인상깊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장관은 회담이나 면담에 들어가기 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 몇 가지는 꼭 숙지해서 들어가는 스타일”이라며 “상대방 입장에서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커리어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이기에 할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했다.
이밖에 박 장관은 외교가에서 ‘노래하는 장관’으로도 유명하다. 지난달 ‘한·중남미 미래협력 포럼’ 참석차 방한한 중남미 장·차관, 주지사 환영 만찬에서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스페인어 노래인 ‘베싸메 무초’를 열창했고, 30국 주한여성대사들의 모임인 ‘서울 시스터스(Seoul Sisters)’ 오찬에서도 남성듀오 어니언스의 ‘편지’를 불러 박수 갈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