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일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17일 “비정상이었던 한일 관계를 정상 궤도에 올린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경제, 안보 등에서 본격화할 한·미·일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표현한 이번 방일의 의미와 성과를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일본 측도 한국의 조치에 호응하는 후속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7/대통령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12년 만에 양자 정상 외교를 복원해 한일이 협력의 방향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양국 국민에게 보낸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3월 6일 한국이 일제 징용 피해자 대책을 선제적으로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수출 규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실타래처럼 얽힌 양국 현안을 포괄적으로 풀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만찬과 이후 정상 간 친교 활동이 도쿄 시내 노포(老鋪)에서 이뤄진 것은 일본 국민에게 ‘한국 대통령이 소박하고 일본 문화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줬을 것”이라고 했다.

신각수 전 주일(駐日) 대사는 “지난 10여 년간 비정상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회복 궤도에 오르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국(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이 추진 중이고, 이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방문이 이뤄지면 양국 관계 정상화가 본궤도에 오를 것이란 설명이다. 신 전 대사는 “그간 한일 대화는 양국 간 신뢰 부족으로 형식적인 데 그쳤지만 이번 방문을 기회로 셔틀 외교가 정례화되고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 북핵 대처 등에서 손발을 맞추기로 했다는 점이 성과”라고 했다. 고베 총영사를 지낸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 외교 전면 재개로 그간 경제계, 사회단체 교류를 막고 있던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 큰 성과를 냈다”면서도 “과거사 문제는 한국 내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고 상당한 반발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정상회담 후속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측의 호응과 한국 정부의 대(對)국민 소통을 강조했다. 신각수 전 대사는 “한국 여론의 기대와 비교해 일본의 호응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윤 대통령도 우리 국민을 상대로 ‘왜 이런 전략적 결단을 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박철희 교수는 “정부가 징용 피해자를 직접 만나 설득하고 보듬는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되고, 여건이 되면 윤 대통령이 피해자를 만나야 한다”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기시다 총리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극적으로 표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기호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사도 광산 문제(일본이 일제 조선인 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 등 한일 외교에 난제가 많아서 다음 기시다 총리의 서울 방문 때 사죄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 지식인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양국 관계의 새 출발점으로 삼고, 실질적인 이득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자이 히로유키(萬歳寛之) 와세다대 법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일본에서 혐한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고, 5년 동안 일본은 ‘한국이 싫다’고 말하는 게 더 쉬운 사회로 바뀌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단번에 혐한 감정을 없애지는 못해도 일본 사회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양국 간 상호 중요성과 비전을 책임 있게 발언하는 지식인들에게 함부로 ‘친일파’나 ‘친한파’라는 레테르(꼬리표)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전후보상네트워크 지지자 대표인 아리미쓰 겐(有光健)씨는 “한국이 손을 내밀었으니 이제는 기시다 내각이 성의를 보일 때”라며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앞으로 답방을 할 텐데, 그때는 적어도 ‘이전 담화의 계승’에 머물지 말고,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사죄 표명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도요대학의 김태영 교수는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사죄나 배상금 지급과 같은 논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재일교포 2세인 김 교수는 “일본이 아무리 사죄하고, 얼마만큼 돈을 낸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앞으로도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교육을 지속해서는 한일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며 “일본 젊은이들에게 과거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외교 전문가들은 일본에서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을 관계의 ‘재정상화’와 국방·안보 영역 협력·조율 강화의 길 위에 올려놓았다”며 “양국 모두 현재의 합의 사항이 미래의 정치적 변화, 선거 결과에 영향받지 않도록 보장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진실성’에 대한 확신을 줄 방안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한 가지 방안은 유감과 사과를 담은 일본의 과거 담화를 강력하고 분명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또 일본 기업들이 (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설립된 기금에 기여하도록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한미 정책국장은 “(일본이) 한국 정부의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으면 양국 간 관계 개선 노력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망가진 한일 관계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인도·태평양 전략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對中)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선 한·미·일 3각 협력이 필수라는 것으로 해석됐다.

앤드루 여 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이번 회담은 한국 내에서 계속되는 반발에도 한일 양국 모두에 있어 ‘외교적 성공’으로 간주돼야 할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징용 해법 제시) 결정은 한일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