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방부 허태근(가운데 왼쪽) 정책실장과 미국 국방부 러처드 존슨(가운데 오른쪽) 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 부차관보 등 한미 국방부·군 관계자들이 24일(현지 시각) 미 조지아주 킹스베이의 미 핵 추진 잠수함 웨스트버지니아함에 탑승했다. 이들은 전날 워싱턴 DC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핵우산’ 도상 훈련인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을 실시했다. 한미 ‘핵우산’ 훈련 대표단이 미 3대 핵전력인 핵잠수함을 함께 탄 것은 한미 동맹 70년 만에 처음이다. /국방부 제공

한미 군 당국이 22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해 이에 대응하는 ‘핵우산’ 도상 훈련을 실시했다. 한미 훈련단은 미 해군의 핵 추진 잠수함에도 처음으로 공동 탑승했다. 핵추진 잠수함이 대북 확장억제수단에 포함된다는 것을 공식화한 의미로 풀이된다. 한미는 이날 공동 발표를 통해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 및 우방에 핵을 사용한다면, 그 위력과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으며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24일 “한미는 고도화한 북한 핵·미사일의 실제 사용 상황을 가정해 확장 억제 수단(핵우산)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공조 대응하는 절차를 협의하고 숙달하는 제8차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양국 국방부를 비롯해 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본부, 전략사령부 등 양국 국방 정책과 군 핵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미 ‘핵우산’ 도상 훈련은 2011년 이후 10여 년간 7차례 열렸지만, 미 측이 주도하고 한국은 참관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핵우산’ 사용 절차 등 구체적인 방법을 한국 측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파트너로서 훈련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과거 미 측은 B-52, B-2 전략폭격기나 핵 잠수함 등 핵우산 관련 전략 자산을 북한에 어떻게 전개할지 구체적인 정보를 거의 공유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상당한 내용을 한국 측에 전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미국이 계속 적대적이고 도발적인 관행을 보이면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수 있다”며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3일 동해상으로 전략순항미사일 4발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한미 대표단이 23일(현지시간) 미 해군 SSBN 웨스트버지니아함을 방문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원우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 알렉산드라 벨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검증이행부차관보, 최병옥 국방부 방위정책관, 로버트 소프지 주한미군사 기획참모부장, 리차드 존슨 미 국방부 핵WMD대응부차관보, 허태근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박후성 합동참모본부 핵ㆍWMD대응본부장, 김수광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장, 이경구 주미 무관부 국방무관, 존 와이드너 미국 전략사령부 계획담당부국장./국방부 제공

한미 ‘핵우산’ 도상 훈련 대표단은 펜타곤에서 훈련한 다음 날인 23일(현지 시각) 조지아주(州) 킹스베이의 미 해군 전략 핵 잠수함 기지를 찾았다. 국방부는 한미 공동보도문에서 “한미가 공동으로 미국의 ‘3대 핵전력’ 가운데 하나인 핵 잠수함 시설을 방문한 것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표단은 킹스베이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해군 웨스트버지니아함(SSBN 736)에 탑승해 내부 시설을 살펴봤다. 웨스트버지니아함은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으로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트라이던트-2′ 24발을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핵 추진 잠수함과 미 본토를 기습 공격할 수 있는 SLBM을 개발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 훈련단에 핵 잠수함과 최신 SLBM을 공개한 것이다. 미 해군의 토머스 뷰캐넌 잠수함전단장은 한국 대표단에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임무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운용 중인 핵잠수함 전력은 동맹국에 제공하는 미 확장억제(핵우산)의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미국이 핵 잠수함 임무를 한국 대표단에 브리핑하고 실제 시설을 확인시킨 것은 이번 ‘핵우산’ 도상 훈련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격상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과거 핵우산 도상 훈련은 미국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한반도 유사시 미 전략자산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여주면 이를 한국 측이 관찰하는 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컴퓨터 키보드를 같이 누르고 양측이 머리를 맞대며 최적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미 핵잠수함 웨스트 버지니아함.오하이오급 핵잠수함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2′ 24발을 탑재할 수 있다./미국방부 제공

한미는 이번 훈련을 계기로 핵우산 운용과 관련해 각종 정보 공유, 협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법을 계속 협의해갈 방침이다. 또 핵 전략 지침을 북한 김정은의 성격과 리더십 특성, 최신 북핵 능력, 날씨와 기후 등 각종 사항을 종합 분석해 ‘한반도 맞춤형’으로 개정하기로 했다. 북한이 군 정찰위성이나 전술핵 탄두 미사일을 비롯해 소형 무인기 등 새로운 공격 수단을 개발하는 만큼, 이에 따른 대책도 업데이트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미 측은 또 전략폭격기, 이중 목적 항공기(DCA)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도 밝혔다고 한다. 이중 목적 항공기는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모두 운용할 수 있도록 미리 지정된 항공기로 F-35, F-16, F-15를 활용한다. 핵무기를 탑재한 항공기를 적시에 발 빠르게 한반도에 전개하는 ‘유연한 핵전력’으로 ‘핵우산’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 국방부는 이날 훈련 종료 후 낸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도 강조했듯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에 대해 핵을 사용할 경우, 그 위력과 상관없이 용납될 수 없으며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북한 외무성은 이번 한미 핵우산 도상 훈련을 “우리를 반대하는 핵전쟁 시연”이라고 주장하며 한미 훈련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적대적이며 도발적인 관행을 계속 이어가다가는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는 북한이 내달 계획된 한미 연합연습 등을 명분으로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벌일 수 있다고 보고 대비 태세를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