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수교 60주년을 맞아 무하마드 빈 살만(37) 왕세자의 방한(訪韓)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국가 공식 수반인 총리에 임명되는 등 국왕을 대신하는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사우디 측은 최근 우리 외교부에 ‘빈 살만 왕세자의 11월 한국 방문을 희망했지만 잠정적으로 어렵게 됐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11월 방한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교부는 본지에 “현 단계에서 한국과 사우디 고위급 교류 관련 확인해 줄 사항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11월 빈 살만 왕세자의 아시아 순방과 연계해 한국과 사우디 간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했었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데 수교 60주년을 맞아 협력 분야를 에너지, 건설·플랜트를 넘어 수소, 원전·방산 등으로 확대할 좋은 기회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가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공식 사업비만 5000억달러(약 721조원)에 달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 사업을 벌이고 있어 건설사 등 국내 기업들의 진입 물꼬를 터줄 정상회담이 필요했다. 올해 8월 주사우디 한국대사관이 사우디로부터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의사를 접수해 구체적 일정을 조율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재계 “사우디 건설특수 기대했는데…”

앞서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이 유럽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터널 공사 등을 수주했지만 도로 등 기반시설 공사에서는 중국 업체의 초기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왕세자의 방한 추진 계획이 알려진 이후 건설업계에서는 ‘제2의 중동 특수’ 기대감이 높아졌다. 사우디는 올해 말 네옴시티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총 길이가 170㎞에 이르는 ‘더 라인(미러시티)’ 수주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우드 왕족 공주인 관광부 차관과 만나 ‘수주 외교’에 나서기도 했다.

또 이달 13일에는 사우디 재무장관이 미국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만나 원전과 방산 분야에 대한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진출을 당부했다. 사우디는 현재 1.4기가와트(GW) 규모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규모가 약 12조원에 이른다. 원전 업계에서는 사우디 원전 시장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경합 중인 구도로 보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방한했을 당시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아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 우리 무기 체계를 둘러봤고 주변에 “우리도 이런 무기개발 연구소를 세우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는 11월 18~1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이를 전후해 일본만 방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와 태국은 1989~1990년 태국에서 발생한 사우디 왕족에 대한 보석 도난 사건 이후 사실상 단교했지만 지난해 30년 만의 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이 무산된 배경에 대해서는 국제정세와 맞물려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사우디는 미국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가 최근 발표한 석유 감산 합의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며 외교 관계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이 미사일 개발을 지원하고, 러시아가 원전 협력을 제안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와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7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지지 의사를 밝히는 등 사우디는 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9년 방한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가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호텔까지 8시간을 동행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약 10조원 규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빈 살만 왕세자가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과 합동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