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경제·안보 복합 위기 등으로 세계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국제 사회가 연대해 자유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유엔총회 연설에서 지난 5월 취임사와 8·15 경축사에서 거듭 강조한 ‘자유 연대’를 제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한국도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 일반 토의 첫날인 이날 회원국 정상 중 10번째로 기조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은 11분간에 걸친 연설에서 유엔 헌장이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촉진한다’고 천명한 것을 언급하며 “세계 시민과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연대해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국제 사회가 기후변화, 식량·에너지 안보 문제 등에 직면한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발발한 상황에서 유엔을 중심으로 연대·협력하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질병과 기아, 문맹, 에너지와 문화의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자유주의 진영이 지금껏 누려온 번영을 지속하려면 함께 연대해 약소국을 도와야 하고, 이를 위한 유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한국은 최근 긴축 재정에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내에서 강조해온 ‘약자 경제’의 글로벌 버전이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비전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제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에 3억 달러 지원, 개발도상국을 위한 팬데믹 대응 기금 3000만 달러 출연, 개발도상국과 녹색·디지털 기술 공유 등을 공약했다.

윤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와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지원한 유엔에서 북의 도발 위협에 굴종하지 않고 자유 진영 연대를 통해 맞서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첫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본격적인 다자 외교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 후 뉴욕의 한 호텔에서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오찬을 하고 글로벌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북한 핵 문제 대응과 한·유엔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저녁에는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동포 간담회도 한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뉴욕 순방 기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각 양자 정상회담도 한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두 번째인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한 후속 조치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세금 혜택 등을 주는 이 법이 한국산 전기차에 불이익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우려와 함께 이를 해소하기 위한 미국의 관심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선 미래 지향적으로 역사, 경제, 안보 문제를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그랜드 바겐’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