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8월 반일 불매 운동인 이른바 '노 재팬'이 심화할 당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중구청 관계자들이 태극기와 '노 재팬' 배너 깃발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바뀌었다고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반일(反日), 반한(反韓)이 정권의 인기 관리에는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한일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었을까요? 감정적으로 속 시원했을지는 몰라도 모두가 패배했습니다.”

3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한국과 일본 국민 200여 명이 모여 지난 2019년 국내에서 벌어진 반일 불매 운동, 이른바 ‘노 재팬(NO JAPAN)’을 돌아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국에서 20년 넘게 일본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구보사와 아키코 ‘락(樂) 어우러짐’(한일 친목 모임) 대표가 마련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일 국민이 대규모로 오프라인에서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구보사와 대표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한일 관계를 위해 먼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했다”고 했다.

3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미우관에서 열린 ‘한일미래포럼 2022’ 행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구보사와 아키코 대표 제공

한국인과 결혼해 아이 넷을 둔 주부 상담사부터 주재원과 유학생, 이중 국적자 등으로 구성된 한일 참가자들은 “한국의 반일 불매 운동과 ‘화이트 리스트’로 상징되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모두가 패배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행업 종사자인 고미네 아키라 전 유니버셜스튜디오 한국사무소 대표는 “반일 운동 두 달 만에 일본 관광 상품 90%가 날아갔고 양국의 수많은 여행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한·일 이중 국적자인 NGO 대표 김연경씨도 “당당하게 ‘한국이 좋다’ ‘일본이 좋다’ 말할 수 없었고 혐오에 따른 상당한 불안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참석자들 간 소규모 토론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비슷할 거라 착각하는데 식당에서 젓가락을 놓는 방법, 술잔을 채워주는 방식조차 다르다”며 “일단 서로의 차이부터 인정하고 그 위에서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음식, 문화 등 서로 좋은 점에 집중하고 충분히 즐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권성주 연세대 객원교수는 “역사 문제에 있어서 막말하는 정치인과 일반 일본 국민들을 따로 분리해 대응했어야 했는데 서로가 감정을 배설하고 화풀이만 했다”며 “먼저 충분히 대화하고 소통하고 어려운 문제는 마지막에 가서 해결하는 ‘출구론’의 긴 호흡이 지금 한일 관계에도 필요하다”고 했다.

3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미우관에서 열린 '한일미래포럼 2022' 행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구보사와 아키코 대표 제공

상호 서운함도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권 교수는 2019년 당시 일부 일본 인사들이 ‘한국 사람들은 일본 맥주를 안 마시면 미쳐 버린다’라고 막말한 것을 거론하며 “반일 운동을 폭발시킨 촉매제가 됐다”고 했다. 반면 구보사와 대표는 “역사 문제 관련 역대 일본 총리와 장관들이 여러 차례 사과했는데 한국 국민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언론 등 책임 있는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런 측면을 잘 설명해 달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친일파, 친한파 딱지가 붙을까 봐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연대하고 강력한 민간 교류를 통해 의사 결정권자의 용기 있는 선택을 받쳐주자”고 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아이 네 명을 둔 상담사 기타지마 가요코씨는 “2019년 이후 교류가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도 방탄소년단(BTS),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여행 교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고 ‘노 재팬’이 ‘예스 재팬’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