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취임 100일이 지난 가운데, 이번 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의 큰 그림도 대부분 공개된 상태다. ▲한국이 경제적 지위에 걸맞게 국제 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글로벌 중추 국가’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를 할 경우 경제 지원 뿐 아니라 안보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담대한 구상’ ▲북핵에 대한 ‘억지·단념·외교’ 전략이 핵심이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를 비롯한 외교·안보 부처들이 외교·안보 구상과 관련된 작명(作名)에도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 등이 국민에게 와닿고 해외 카운터파트에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정책 용어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외교 정책 구상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Korean Peninsula Peace Process)’가 너무 평이하고 축약적이라는 문제 의식도 깔렸다고 한다.
그 결과 ▲글로벌 중추국가는 GPS(Global Pivotal State) ▲담대한 구상은 AI(Audacious Initiative) ▲억지·단념·외교는 3D(Deterrence, Dissuasion, Diplomacy)라 불리고 있다. 일종의 언어유희를 활용한 정책 네이밍인 셈인데 이같은 조어들이 외교 무대에서는 먹혀들고 있다는게 당국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일례로 박진 외교장관은 올해 6월 미 워싱턴DC 출장 당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라운드테이블 연설에서 윤 대통령의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을 설명하며 “GPS 시스템이 사용자에게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처럼 한국이 이 불안정한 시기에 가치있는 가이던스(guidance)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척 헤이글,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등의 호응을 얻었다. 박 장관이 정부 출범을 전후해 GPS와 3D 이름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대북 제안인 담대한 구상은 외교관들 사이에서 편의상 ‘AI’라 불린다.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외교 당국은 이번 구상 발표에 앞서 미국 측과 충분한 의사 소통과 정책적 조율 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에 관여한 한 인사는 “국무부 내 웬만한 한국 업무 담당자들은 이제 AI라고 말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안다” “결코 인공지능(AI)을 떠올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최근 방한한 대니얼 크리튼 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이같은 작명에 흡족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