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12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귀순 어민 강제 북송’ 당시 사진을 10장 공개했다. 귀순 어민 2명이 판문점에 도착해서 북한군에 넘겨질 때까지의 과정을 연속 촬영한 것이다. 한 어민은 얼굴이 피범벅이 될 정도로 벽에 머리를 찧는 등 북송에 격렬히 저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던 문재인 정부의 설명과는 딴판이었다.
귀순 어민 2명은 포승줄에 묶이고 두 눈이 안대에 가려진 채 2019년 11월 7일 오후 3시 판문점에 도착했다. 검은색 옷차림의 어민은 호송 요원들이 안대를 벗기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괴로워했다. 눈앞에 군사분계선(MDL)과 북한군을 발견한 것이다. 풀썩 주저앉자 사복 차림의 경찰특공대원들이 일으켜 세웠다. 이 어민은 비명을 지르며 자해했다.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 중 한 장은 벽에 머리를 찧은 어민이 선혈로 뒤덮인 얼굴로 맨바닥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이라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고통스럽게 처형될 것이라는 공포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호송 요원들이 이 어민을 MDL까지 끌고오자 기다리던 북한군 병사들이 양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어민은 필사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빼며 버둥거렸다. 파란색 상의를 입은 귀순 어민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끌려갔다. 이들이 MDL을 넘어 북측에 넘겨지기까지는 12분이 걸렸다.
통일부는 통상 북한 주민이 송환되는 장면을 기록 차원에서 촬영해왔다. 이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통일부가 귀순 어민 강제 북송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공개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귀순 어민 2명은 정부 합동조사에서 자필 귀순의향서를 남겼다. 정부는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며 묵살했고 합동조사는 사흘 만에 종료됐다. 귀순 어민들은 선상(船上)에서 동료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으로 규정됐다. 정부는 나포 사흘 만인 11월 5일 북측에 ‘어민들을 추방하고, 선박까지 넘겨주겠다’고 했다. 같은 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것이다. 당시 서훈 국정원장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는 최대한 빨리 끝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12일 통일부가 공개한 10장의 사진들은 북한 어민들의 ‘귀순 진정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간 이들이 강제 북송되는 과정은 “판문점에서 안대가 풀리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는 전언 형태로만 묘사돼 왔다.
2019년 11월 7일 강제 북송 당시 귀순 어민들은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얼굴을 감싸 쥐거나 맨바닥에 주저앉으면서 거세게 저항했다. 사복 차림의 경찰특공대원들이 이들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밀어 넣으면서 제압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한 귀순 어민은 비명을 지르고, 스스로 머리를 찧으면서 자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발적 북송이 아니라는 것이다. 귀순 어민들은 정부의 합동조사 과정에서 자필 귀순의향서까지 남겼다.
이날 통일부가 공개한 귀순 어민 북송 사진은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던 그동안의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 어민들은) 귀순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했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최근까지 “그 사람들이 귀순할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들의 ‘귀순 진정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이 “자해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 강제 북송 당일 국방부는 상부로부터 “자해 등 우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 대대에서 에스코트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방부가 “민간인 송환은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하자, 청와대 측은 경찰특공대원 8명을 귀순 어민 호송에 동원했다. 통상 표류해 온 북한 주민을 호송할 때는 대한적십자사가 인계한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당시 서훈 국정원장이 귀순 어민 합동조사를 서둘러 강제 종료시킨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원장은 귀순 어민 강제 북송 과정에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강제 북송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향후 검찰 수사의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강제 북송 보름 뒤(2019년 11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정책 간담회 직후 ‘강제 북송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외교·안보 쪽의 그런 거는 (대통령께) 보고를 하고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 전 대통령의 최종 지시가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태스크포스(TF)는 문 전 대통령이 11월 5일 김정은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송부하면서 귀순 어민 인계 의사도 함께 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F 소속인 태영호 의원은 “문명 국가에서 재판도 없이 사흘 만에 ‘처형’을 한 셈”이라며 “김정은을 모시려 귀순 어민을 제물(祭物)처럼 다룬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강제 북송 결정권자’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회에 제출한 문건을 보면 “합동정보조사 바탕으로 국가안보실이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서 추방했다”고 명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