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관계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해 300억원대의 한일 공동기금 조성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르면 다음 주 외교부 1차관이 주재하는 민관협의회를 출범시켜 징용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 각계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며 “다음 달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마무리되는 대로 한일 간 고위급 채널을 가동해 한일관계 개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민관협의회는 정부, 피해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참여할 전망이다.
정부가 징용 배상 해법 도출을 서두르는 것은 당장 8~9월로 예상되는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현금화 조치를 한일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해 왔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대법원 최종 판결 때까지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일본은 한일 협정으로 한국에 대한 배상 의무는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징용 배상 해법으로는 법원 판결로 인해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할 돈을 한국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일본 측에 청구하는 이른바 ‘대위변제’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세부적으로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기금으로 피해자에게 위자료 형식으로 지급하는 ‘1+1′안, 기금 조성에 양국 기업은 물론 국민 성금도 보태는 ‘문희상 안’(1+1+α) 등이 검토됐다. 외교 소식통은 “민관합동위가 검토하게 될 안도 이 범주 내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어떤 안이 됐건 핵심 쟁점은 배상 기금 출연에 일본 전범 기업들이 참여하느냐다. 앞서 대법원은 2018년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은 이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고 보고, 피고 기업들의 기금 출연에 강력 반대해왔다. 반면 징용 피해자 측은 전범 기업들이 배상에서 발을 빼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날 외교가 일각에선 한·일이 최대 300억원대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 300여 명에게 보상하되 일본 전범 기업들은 기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 방안을 조율 중이란 관측이 나왔다. 한국 기업, 한국 국민 성금, 강제 동원과 관련이 없지만 한일 관계 개선에 뜻을 같이하는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재일교포 관련 일본 기업들 가운데 참여 의사를 밝힌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국 기업으로는 포스코·KT 등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대일청구권자금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거론된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현금화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데 미쓰비시 등은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한국 기업들 위주로 모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규모는) 300억까지는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조만간 구성되는 민관협의회에서 안을 만들어 정부에 건의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민관협의회 구성을 위한 인선 작업은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민관협의회에 징용 피해자 측 인사들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고민이 크다”고 했다. 이들은 일본 전범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는 방안들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데 거부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엔 민관협의회가 이달 중 출범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출범 시기는 다음 달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