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9∼30일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대통령실이 10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다. 1949년 결성된 나토의 정상회의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도 처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나토 공식 초청에 따라 우리나라 정상으로선 처음으로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을 다자 외교 무대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나토 동맹 30국과 파트너국 간 회의 세션에 참석한다. 또 나토 회의에 참석하는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양자 회담도 할 것이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나토는 1949년 옛 소련 등에 대항해 미국과 서유럽 자유 진영 국가들이 맺은 북대서양조약에 바탕을 둔 군사 동맹이다. 최근 옛 소련 소속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 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열리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선 반(反)러시아 연대 방안이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 등이 비회원국 파트너로 초청됐다. 미국이 나토 군사 동맹과 아시아·태평양 동맹·파트너 국가들을 엮어 러시아를 넘어 중국까지 견제하는 연대를 결성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해 나토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나라 역할을 확대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1일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군사 동맹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다자 무대에 데뷔하게 됐다. 나토 동맹국들의 파트너국으로 초청받은 것이어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 구상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결정한 것은 급변하는 세계 질서와 관련이 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이 가입한 나토 군사 동맹과 아시아·태평양 동맹, 파트너 국가들을 엮어 반(反)중·러 연대를 더 강화하려 하고 있다. 실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토 정상회의에서 ‘신(新)전략 개념’을 채택할 것”이라며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새로운 위협으로 규정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 경제 안보 이슈가 부상한 상황에서 열린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이미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한국 외에 일본 총리와 호주, 뉴질랜드 정상도 초청됐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 핵심 동맹·파트너국 정상들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反中) 성격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선 “양국은 공급망 협력 강화, 글로벌 이슈에 대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한반도나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이슈에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바이든 미 행정부와,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구상이 맞아떨어지면서 첫 해외 순방이 나토 정상회의가 된 셈”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배경 설명에서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국제 질서 유지’를 강조했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주도하는 자유주의 진영에 서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해온 중국은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중국은 최근 일본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조율 중이란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자 관영 매체를 통해 “‘아시아 나토’가 생기면 결코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가입을 결정한 IPEF에 대해서도 중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라며 반발했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움직임을 불편해하면서도 윤 대통령 취임식에 시진핑 주석 측근인 왕치산(王岐山) 부주석을 보내는 등 나름 공을 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 주도 나토 정상회의까지 참석하면 중국과의 긴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연대하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함께하는 다자 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는 것이 대중(對中) 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했다. 다만 북핵 문제나 교역 등에서 중·러와의 협력이 불가피한 점도 있어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이 도전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