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나눔재단과 한반도평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통일 콘퍼런스가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남북 관계의 잠정 목표로서의 경제 통합’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명성 기자

“통일은 분단 현상 유지를 원하는 외부의 힘, 즉 원심력을 최소화하고 내부에서 (남북이) 서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최대화했을 때 가능합니다. 1990년 통일을 이룬 독일이 바로 그랬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9일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전환의 한반도, 통합으로 통일을 연다’를 주제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새 정부 출범을 10여 일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선 정파를 초월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통일 여건 조성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영선 통일과나눔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현 정부는 평화 공존을 내세웠지만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평화 공존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미·중 갈등과 남남(南南) 갈등으로 단기적 통일은 어렵지만, 남북한 교류·협력과 통합으로 장기적 통일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독일이 그리했듯 한국도 남북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상호 의심을 줄여야 한다”며 통일외교를 강조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국이 한반도 통일이 갖는 파급 효과를 우려하며 분단 유지를 원하는 원심력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독일 통일을 예로 들며 “헬무트 콜 총리는 통일을 우려하는 프랑스, 영국 등에 통일은 ‘유럽의 독일화’가 아닌 ‘독일의 유럽화’라고 적극 설득해 외부 우려를 불식했다”고 했다. 이어 “한국 역시 통일 한국의 불확실한 외교 정책을 우려하는 미국과 일본, 남북통일로 대미 완충 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꺼리는 중국에 둘러싸여 있다”며 “북한 문제와 관련한 다자 협의 기구 등을 만든다면 상대국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어 분단 현상 유지를 원하는 원심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동시에 국가 내부에서 통일 방향으로 작동하는 ‘구심력’도 강화해야 한다”며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 정책으로 통일 전 20년 동안 양독 간 상호 협력을 쌓아 내부 신뢰를 쌓았다”고 했다.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을 같은 민족이 아닌 남, 통일 대상보다는 적으로 보는 젊은 층의 인식도 통일 구심력을 약화하는 요인”이라며 “실익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 통일 필요성을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측면에서 고민한 구심력 강화 방안을 소개했다. 점진적 통일론의 하나로 ‘남북 경제 통합’을 제시하며 “분단 현상 유지나 흡수 통일보다는 경제 통합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로 현상 유지는 불가능에 가깝고, 한국 주도의 흡수 통일은 평화적이지만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경제 통합은 단순한 물적 교류로 시작해 비(非)관세동맹, 궁극적으로는 화폐 단일화까지를 염두에 둔 단계적 통합을 뜻한다. 단순 경협과 통일의 중간 단계다. 김 교수는 “경협만으로는 남한이 큰 편익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북한 경제의 장기 발전을 추동하기도 어렵다”며 “그동안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북한 인프라 건설이나 전력 지원 같은 대북 경협 방안의 효과는 불확실했고, 북한 체제 변화와도 무관했다”고도 했다. 퍼주기식 경협은 북한 정권의 배만 불려 분단을 고착화하고 정작 통일엔 독(毒)이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 통합은 북한도 시장경제의 핵심 제도를 받아들이고 국제 경제 질서에 편입된 상태까지를 가정한다”며 “북한이 자본주의 유입을 꺼릴 수 있지만 낮은 단계의 통합에서 서서히 단계를 높이면 극복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토론에서 “경제 통합을 위한 제반 사항을 논의할 때 안보적 문제까지 동시에 집어넣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거나, 경제 통합에서 국제사회와의 협업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