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맹·우방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 동참을 유보하던 한국 정부가 24일 러시아의 전면적인 대(對)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막차’를 탔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11시22분 출입기자단에 발송한 문자메시지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 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정부가 제재 동참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외신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별 군사작전 선포 소식이 전해지기 약 30분 전이었다. 약 4시간 뒤엔 문재인 대통령도 “경제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한국도) 이에 동참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국가 간의 어떤 갈등도 전쟁이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는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들어 제재 동참에 소극적이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제재에 동참하더라도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독자 제재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하루도 안 돼 ‘제재 동참’으로 급선회한 배경을 놓고 정부 주변에선 “정세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주초부터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공개 경고하는 등 군사행동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제재 동참을 주저한 것은 정보 실패로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확신하고 관련 정보를 동맹·우방들과 공유했다”며 “한국의 뒤늦은 대응은 미국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앞서 미국 주도 제재에 유럽연합(EU)과 영국, 캐나다·호주·일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합류했지만 한국은 입장 표명을 주저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여러 채널을 통해 아쉬움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전직 관리들은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서울이 (제재) 결정을 질질 끌고 있다”(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부차관보),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취재진과의 화상 브리핑에서 ‘대러 독자 제재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국제사회의 수출 통제를 포함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라며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러시아 군·정부 인사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자금 동결, 여행 금지 같은 제재를 새로이 부과하기보단 미국 등 국제사회가 추후 부과할 경제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미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전자 부품·기기의 대러 수출 통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