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25전쟁 금성전투에 출전해 가슴에 중공군 총탄을 맞았던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서울시지부장. 총탄은 아직도 류 지부장 가슴에 있다./국가보훈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중국 공산당이 ‘항미 원조 7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영화 ‘1953 금성 대전투’(2020)가 곧 국내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에 류재식(90)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장은 7일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1953년 7월 강원도에서 벌어진 금성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전우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목숨을 다해 싸운 전우들의 수없이 많은 희생을 왜곡하는 영화가 조국에서 상영된다니 통탄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국립묘지와 조국 산천에 묻혀 있는 전우들이 저승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뼘 땅도 적에게 내주지 않겠다며 싸우다가 뼈 한 조각, 살 한 점도 남기지 못하고 녹아 없어진 전우도 있는데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어떻게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왔는지, 6·25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젊은 세대가 6·25를 중국과 북한의 관점으로 바라보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류 지부장은 1950년 11월, 춘천중 5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후 장교로 임관해 금성전투에 투입됐다. 그 역시 격전 중 가슴에 중공군 총탄을 맞기도 했다. 어깨뼈에 부딪친 탄알이 가슴 안쪽에 깊게 파고들어 수술로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총탄이 70년 넘게 내 가슴에 박혀 있다”며 “공항에서 금속탐지기를 지날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난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중공군 총탄을 목에 맞고 컥컥대면서 “소대장님 살려주세요”라던 연락병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장./류 지부장 제공

금성전투는 1953년 6~7월 정전 직전 강원 화천·철원 일대 영토를 놓고 한국군·유엔군 10만명, 북한군·중공군 24만명이 격돌한 6·25 최후의 대접전이었다. 아군은 전사자 2689명 등 1만4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적군도 전사자 2만7000여 명을 비롯해 7만명가량 손실이 났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북·중이 화력을 집중했던 금성 돌출부는 방어가 쉽지 않은 지형이었고 연합군도 즉각 반격해 영토의 상당 부분을 탈환했다”며 “당초 전선보다 4㎞가량 물러났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려 애쓴 분전(奮戰)이었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금성전투 고지전에서 활약했다. “우리도 이렇게 열심히 싸웠다고, 영화 한 편 만들어줄 수 없느냐고 감독들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국에서 먼저 이런 영화를 만들어 한국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군요.”

6·25 당시 화천 수력발전소, 철원 노동당사를 점령하고 거침없이 북진(北進), 압록강 코앞인 만포까지 진격했던 류 지부장에게 중공군은 ‘통일의 적’이었다. 금성전투 당시 아군 진지에 포탄을 퍼부은 뒤 인해전술로 참호를 밟고 넘어오며 불던 중공군의 피리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고 했다. 류 지부장은 “먼 시간이 흐른 뒤에도 후세가 우리를 온전히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7일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중국 공산당 선전 영화 '1953 금성 대전투' 상영 허가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장련성 기자

‘1953 금성 대전투’의 국내 유통 소식이 알려지자 재향군인회 등에는 “이런 영화가 어떻게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느냐”는 참전용사·유족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던 문 대통령의 굴욕적인 발언은 아직도 국민들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한다”며 “이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을 침략한 중공 찬양 영화를 우리 안방에서 보라는 것이냐”고 했다. 같은 당 소속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철저히 중국과 북한의 시각으로 제작한 영화”라며 “청소년들에게 침략 전쟁에 가담한 중국 인민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를 15세 이상 관람가로 보여주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