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됐던 한·일 관계가 ‘일본 외교관의 문재인 대통령 폄훼 발언’ 파문으로 다시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잇단 악재에 양국은 올림픽 개회를 코앞에 두고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19일 문 대통령 방일과 관련해 최종 결론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15일 주한 일본대사관 서열 2위인 소마 히로히사 총괄 공사와 한 언론사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다. 이 자리에서 소마 공사가 ‘일본은 한·일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데 문 대통령 혼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자위행위’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보도가 나간 뒤 일본대사관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유감이지만 문 대통령을 향한 표현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파장은 커졌다. 외교부는 17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 정부가 재발 방지 차원에서 가시적이고 응당한 조치를 신속히 취해 달라”고 했다. 사실상 소마 공사의 소환을 요구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발언이 쏟아졌다.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일”이라고 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도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 내에서도 일본 방문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G7 정상회의 때 한·일 회담 무산 등 악재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본 공사 발언 파문’까지 겹쳐 여론이 악화된 데다, 일본을 방문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회담 격식·성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한국이 제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완전히 선을 긋지는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우리는 마지막까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다”며 “회담 성과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고, 전향적인 답변을 촉구한다”고 했다. 정부 내에서는 올림픽 계기에도 양국 정상이 만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은 완전히 물 건너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올림픽 이후에는 양국 모두 주요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