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았던 일본 하시마(端島) 탄광의 전경. 멀리서 보면 마치 '군함(軍艦)'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렸다. 일본은 이곳을 비롯해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마이니치신문

일본이 한국인 강제노역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세계산업유산으로 등재된 시설에서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를 6년째 뭉개고 있는 것으로 12일 공식 확인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세계 2위의 분담금을 지렛대로 유네스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에 대해 유네스코 산하기구가 직접 비판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추진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싸고 한·일의 신경전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군함도 문제가 양측 교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서 일본은 2015년 산업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유네스코의 권고에 따라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조치와 함께 인포메이션센터 설립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유산 등재 후 유네스코에 두 차례(2017년과 2019년) 제출한 후속 조치 이행 경과 보고서에서 약속 내용을 누락했다. 더구나 작년 6월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 대신 “한국인 차별은 없었다”는 증언 등 역사를 부정·왜곡하는 내용들을 잔뜩 전시했다.

당시 외교부가 주한 일본 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 반발함에 따라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공동 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조치가 불충분하다’ ‘강제 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전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날 공개한 결정문에서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한다”며 “공동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하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이 결정문은 오는 16~3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 기간에 채택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