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글로벌 리더의 시각: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부 장관' 세션에서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이정훈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사회로 토론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30일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협력체인) ‘쿼드’의 문을 한국에 열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이 제기되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고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펜스 전 부통령은 조선일보 주최 제12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역내의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들’과 미국이 함께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부 장관 역시 “한국이 오래된 동맹인 미국과 함께해 미래에 있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쿼드에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 현직 백악관 관리도 이날 “미국의 관심은 쿼드”라고 했다. 미국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한국의 쿼드 참여를 공개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초당적 컨센서스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준다.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12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다: 공존과 번영을 위해’를 주제로 막이 오른 가운데 참석자들이 개회식에서 ALC에 대한 사회자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 원형 테이블 맨 왼쪽부터 마크 에스퍼 미국 전 국방부 장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박병석 국회의장, 김부겸 국무총리. 이날 행사는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라 99명 이하(스태프는 제외)만 착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고운호 기자

미국의 전직 상·하원 의원들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쿼드 참여를 주문했다. 마이크 비숍 전 하원의원은 “북한, 대만, 일본 심지어 중국인들도 한국을 ‘희망의 등불’로 바라보고 있다”며 “한국의 결단이 이들에게 앞으로 수십년간 영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전직 미국 관리들은 조심스럽게 미·북 대화 재개 가능성을 점쳤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라고 했다.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미·북 대화는 정권 초기 이뤄져야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을 미국이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날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ALC 개막식에는 박병석 국회의장, 김부겸 국무총리, 정세균 전 국무총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참석했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 등 각계 주요 인사 90여 명이 참석했다.

“바이든 정부 장점은 개방성… 북한,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안돼”

“북한은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안 된다.”(스티브 비건)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마크 내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깊이 관여해 본 미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북한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스티브 비건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는 30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북한의 미래’ 세션에서 “그간 미북 관계가 난국에 빠진 상태로 정권을 승계받았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라며 “북한은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며 얻었던 기회는 날렸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글로벌 리더의 시각’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에스퍼 전 장관은 “6·25전쟁 폐허에서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저력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뤄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비건 전 부장관은 미·북 막후 협상의 주역인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과 바이든 행정부의 ‘잘 조율된 실용적 대북 접근’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토론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센터장은 “4년 뒤면 다시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미북 대화는 정권 초기에 이뤄져야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있는데 이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비핵화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비건 전 부장관은 “북한 비핵화는 하룻밤에, 한 행정부 임기 안에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라며 “원했던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관계 진전은 이뤄냈다. 오늘도 (하노이 협상을 준비한) 2년 6개월 전만큼이나 ‘비핵화가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굳게 믿는다”고 했다.

뒤이어 열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미·북 관계’ 세션에 참여한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대화의 공이 북한에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만날 준비가 돼 있으며 대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며 “북한 반응이 도발보다는 어딘가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것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와 차별화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장점은 개방성”이라며 “한국·일본 등 파트너들과 협력하면서 모든 가능성과 기회를 검토해나간다면 큰 장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비핵화 협상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북한이 식량난과 코로나 방역 실패로 내부 사정이 혼란스럽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다”며 “대화 제의를 하더라도 한국 대선을 전후해 움직일 듯하다. (비핵화 협상에 있어 2021년은) ‘잃어버린 1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한 입장에서는 수십 년 온갖 대가를 치르며 핵 위력·투사력을 과시한 만큼 ‘협상 가격이 올랐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협상이 어려운 가장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중국 변수가 북한 비핵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윤 전 대표는 “그간 비핵화 협상이 북미 사이에서 이뤄졌는데, 최소한 한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협상이 필요하다”며 “비핵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내퍼 부차관보는 “미국은 중국이 (북핵) 해결책의 전부는 아녀도 일부는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