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이하 훈련소) 조교 병사들이 최근 ‘훈련병 인권을 중시하라’는 군(軍) 지휘부 방침에 대해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훈련병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조교들의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군 부실 급식 사태로 혹사당하는 일선 조리병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한 데 이어 ‘군기'의 상징적 존재인 훈련소 조교들까지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훈련소 조교 A씨는 지난 26일 페이스북 페이지 ‘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제보 편지를 보냈다. 그는 “240명 훈련병을 조교 4명(인원이 부족하고 제때 충원도 되지 않음)이 맡는다”며 하루 17시간 넘는 격무에 시달리는 훈련소 조교들의 일과를 소개했다. ▲오전 6시 이전 기상, 전투복 위에 코로나 방호복을 덧입고 ▲200명 넘는 훈련병 식사를 끼니마다 막사로 운반하며 ▲화장실 이용을 통제하고 ▲화장실 등 시설물을 1개 생활관이 이용할 때마다 매번 소독하며 ▲훈련병 취침 상태 확인 후 ▲다음 날 일정 결산한 뒤에야 ▲오후 10시 이후 샤워, 11시가 돼야 잠든다고 한다.
조교 업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량 배식을 위해 반찬 등을 저울에 재며 배식에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훈련병 고충 청취 ▲아픈 훈련병 약을 주거나 의무실·병원 호송 ▲충성클럽(PX)·전화·세탁·적금 신청 등 안내 ▲종교 활동 인솔 ▲보급품 사이즈 조사 후 지급 ▲신체·혈액·인성 검사 등 잡무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교들의 이런 불만은 최근 부실 급식 사태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군 지휘부가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강조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26일 훈련소를 방문, ‘인권 존중실’ 개소식을 주관했다. 육군은 훈련소 흡연 허용 등 ‘인권 개선안’도 논의하고 있다. A씨는 “훈련병들이 이제는 일과 시간에 조교가 생활관에 들어오든 말든 누워있는다”며 “조교가 있어도 소리를 빽 질러대며 욕설을 일삼는 훈련병이 태반이다”라고 했다. 과거 ‘공포의 붉은 군모'로 불리며 훈련병들의 경외 대상이었던 조교들이 이제는 훈련병 눈치 보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육군은 A씨 지적을 상당 부분 사실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훈련병이 ‘이러면 신고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데 대해 조교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조교들 사이에선 “갑질 손님 상대하는 감정노동자가 된 기분”이라는 말도 나온다. 훈련소 조교로 최근 전역한 한 예비역 병장은 “훈련 기간 동고동락하던 조교와 훈련병들이 수료식 때 헤어지며 눈물을 쏟던 광경도 이제 옛 일”이라며 “이런 식의 ‘인권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야전으로 가면 군 문화 전체가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훈련소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고 “조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노고를 격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군이 최근 부실 급식과 코로나 방역 ‘인권침해’ 논란에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식으로 대처하다 보니 이런 식의 ‘풍선 효과’가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일선 중·소위, 중·하사 등 초급 간부들의 업무 피로도 역시 극에 달한 상황”이라며 “논란이 터질 때마다 일시적인 땜질 처방을 할 게 아니라 조리병·조교 등 다양한 구성원의 사기, 군 전체의 단결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