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외교 리스크로 지적받아 온 ‘미·중 줄타기’ 노선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이 대북 정책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대신 안보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사실상 동참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취해온 정책 중에는 이번 정상회담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들이 적지 않아 정상회담 후속 조치 차원에서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3대 과제로 탈원전 정책, 대북전단금지법,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책을 꼽았다.
◇국내선 탈원전, 해외선 원전 건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양국 정상은) 원전 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 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막대한 부가가치뿐 아니라 핵 안보와 직결된 중요한 원전 시장을 적성국인 중국·러시아가 싹쓸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미국이 원전 강국인 한국을 강력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원전 원천 기술 보유국이고, 한국은 미국의 우방국 중 국내외 원전 설계·건설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경제성 평가를 왜곡해 월성 1호기를 폐로시키고, 7000억원 이상이 투입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시키는 등 출범 이후 줄곧 탈원전 노선을 걷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할 경우 ‘국내에선 탈원전, 해외에선 원전 건설’이란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안에 국내 탈원전 정책을 대폭 수정하는 방향으로 입장 정리가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단금지법, 한국 정체성에 배치돼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히는 등 ‘인권’이란 단어를 모두 4차례 썼다. 또 “표현·종교·신념의 자유 보장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일단 반인권·반민주 정권인 북·중을 겨냥한 것이지만, 북한 인권 개선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속에 한국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대북전단금지법에 큰 우려를 표해왔다. 이 같은 시각은 미 국무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20 인권 보고서' 한국 편에도 담겼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직결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미국은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표현이 들어간 것과 관련, 한국이 대북전단법 수정을 약속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변화가 없으면 미국은 정상회담 이행 의지에 의심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사드 정식 배치 넘어 ‘3불 합의’도 손봐야
전문가들은 4년째 임시(야전) 배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주한미군 사드 포대를 조속히 정식 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이 종료돼 이론적으론 중국 공격용 미사일 개발도 가능해진 마당에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인 사드 정식 배치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시간을 끌어온 사드 정식 배치를 이번 계기에 완료해야 한다”고 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사드 배치를 끝내는 게 미사일 지침 폐지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미 측은 사드 기지 장병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에 대해 우리 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최강 부원장은 “차제에 ‘사드 3불’ 합의도 이번 계기를 통해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무마하기 위해 중국에 ‘미국 MD(미사일방어)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군사 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