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가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뿐 아니라 한국 내 인권 문제까지 조목조목 거론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 중인 파상적 대북 인권 공세의 예고편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 시절 소홀히 다뤘던 북한 인권 문제를 비핵화와 함께 대북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협력을 이유로 북한 인권을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21일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대북 정책에 편승해 북한 인권은 뒷전이었던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으로 비상이 걸린 셈”이라며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출신인데 인권 문제로 지적받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국무부가 북한 인권과 함께 여권 인사들의 부정부패와 성추행 사례들까지 언급한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보고서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패 혐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횡령·배임 기소,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문 등이 열거됐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인권 보고서에 굳이 담을 필요가 없는 내용을 게재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외교부가 분주할 것”이라고 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외면을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퇴행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무부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공개된 시점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방한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주민 학대’를 거듭 지적한 직후다.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수주 내 완료될 것”이라고 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기도 하다. 외교가에선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나라가 김정은 정권의 인권 유린에 눈감다가 난처한 상황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 로버타 코언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20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인권을 평화의 걸림돌로 여긴다”며 “이런 것(인권)을 다른 데다 치워두고 평화를 얻을 순 없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핵무기와 인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문제 삼아야 한다”며 “(과거 소련·동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인권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핵 합의가 성사된 전례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가 추진하는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에 3년 연속 공동 제안국으로 나서지 않은 데 대해서도 “북한의 협박과 경고에 따른 결과고,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최근까지도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리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다”(강경화 전 외교장관)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 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루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했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에 이어 미국도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누차 지적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내에는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 발탁된 정 박 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를 비롯해 이 같은 국제사회의 인식을 공유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중국 인권에 대한 서방의 지적을 ‘내정 간섭’ ‘허위·날조’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20일 북한 외무성에 따르면, 한대성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는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일부 나라들이 중국 신장 지역과 홍콩 문제를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에 이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며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부 주권 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허위와 날조 자료에 근거해 범죄시하고 있다”고 했다.
한대성의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핵심 대북 정책으로 다룰 것을 예고한 상태에서 북·중 밀월을 과시하는 동시에 인권 문제에 대한 ‘동병상련’ 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