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거쉬먼 미국 NED 회장

미국 비영리단체인 미국민주주의지금(NED) 칼 거슈먼 회장이 22일(현지 시각)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에 관한 내 인터뷰를 악용해(misuse) 실망스럽다”고 말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거슈먼 회장은 상당수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NED의 수장으로, 인권 운동가들 사이에선 ‘인권 운동의 대부’로 불린다.

외교가에선 “통일부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불식시키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해외 저명인사의 발언을 당사자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다”고 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외신 인터뷰도 외교가에서 큰 논란이 되는 등 대북전단금지법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 여론전이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통일부는 앞서 여당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다음 날(15일) 배포한 설명 자료에 “거슈먼 회장도 VOA(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바 있다”고 적었다. “전단살포가 북한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다” “탈북자들조차 (전단살포가) 북한 주민에게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슈먼 회장의 인터뷰를 발췌해 인용한 것이다. 통일부는 이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지난주 주한 외교 공관 50곳에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인용한 VOA 인터뷰 기사 원문은 제목부터가 “NED 회장 ‘대북전단 금지 유감’”으로 시작한다. 거슈먼 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대북전단이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대북전단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라며 한국 정부의 전단 살포 단체 제재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전단 살포를 막아) 북한을 달래려고 하는데, 평화를 도모하기는커녕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만을 손상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거슈먼 회장은 ‘NED가 전단살포 단체에도 자금 지원을 하느냐’는 질문에 “지원한 적 없다”고 답했다. 이어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더 효과적이고, 정교하게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들이 있다”고 했다. 전단 살포가 상대적으로 덜 효과적이란 뜻이지 효과가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전단 살포의 ‘역효과’ ‘부작용’을 강조하는 대목에 거슈먼 회장의 발언을 끼워 넣어 마치 NED의 수장이 ‘대북 전단 무용론’을 주장한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이에 대해 거슈먼 회장은 이날 RFA 인터뷰에서 “NED는 어떠한 전단살포 활동에도 기금을 지원하지 않지만, 정확하고 새로운 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을 지지한다”며 “이들 없이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다”고 했다. 전단 살포 단체를 금전적으로 돕진 않지만 지지·응원한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자신의 발언을 왜곡한 통일부에 대한 불쾌감이 엿보인다”고 했다.

거슈먼 회장은 또 대북전단금지법의 정당성을 주장한 서호 통일부 차관의 NK 뉴스 기고문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은 서 차관이 말한 바와 같이 더 효과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촉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반대 효과를 내 남북한 사이 분단의 벽을 강화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 CNN 방송 인터뷰에서 앵커가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미 의원들도 문제 삼고 있다’고 하자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제한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인권 제한의 필요성을 주장한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엔의 인권 업무를 총괄하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부대표를 지낸 강 장관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