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6일(현지 시각)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에 한국과 일본 등 핵심 동맹들이 서명한 데 대해 “중국 대신 미국이 규칙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CEP을 통한 중국 중심의 무역 질서를 견제하고, 민주 진영 동맹들과 협력해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우리 정부는 “RCEP을 미·중 대결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16일(현지시간)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바이든 당선자 / AFP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가진 경제 구상 관련 기자회견에서 ‘세계 무역 규모의 30%를 차지하는 RCEP에 미국도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세계 무역 규모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다른 25%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는 민주 진영 국가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래야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경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결과를 좌우하게 하는 대신, 우리가 이 길의 규칙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 내내 강조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말대로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회복하겠단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정책 계승’을 다짐한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 시절 적극 추진됐다가 트럼프 정부 때 폐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되살려 한국 등 동맹들의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TPP는 오바마 정부가 주도해 발족한 다자(多者) 무역 체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노동자들에게 재앙”이라며 탈퇴했다. 일본 등 나머지 국가가 CPTPP(포괄적·점진적 TPP)로 이름을 바꿔 2018년 공식 서명했지만, 미국의 불참으로 존재감은 떨어졌다.

이날 바이든은 TPP 복귀 여부에 대해선 확답을 하지 않았다. CNN은 “바이든이 미국 주도 통상 질서 수립을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했다. RCEP 출범에 대응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글로벌 자유무역의 피해자로 꼽히는 미국 중서부 노동자 등의 요구를 무시하고 당장 TPP와 같은 다자 무역 체제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 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극장에서 화상회의 시스템 줌(Zoom)을 이용해 비대면 형식으로 경제 자문단과 만나 발언을 듣고 있다. 그 뒤로 바이든이 후보 시절부터 사용하고 있는 정책 구호인‘발전적 재건(Build Back Better)’이 보인다. /AFP 연합뉴스

바이든은 대신 향후 미국이 추진할 글로벌 무역 협상의 원칙에 대해 “미 노동자들에게 투자하고 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노동자와 환경보호론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포함될 것, 징벌적 무역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난 친구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독재자를 포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 전쟁 같은 무역 관행과는 단절할 것임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는 “RCEP과 TPP는 대립이나 대결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를 강화하고 우방국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CPTPP 가입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할 것 같다”면서도 “RCEP과 TPP는 아·태 지역 무역 자유화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상호보완적”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중국 주도의 질서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바이든이 RCEP을 우호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팽배하다. RCEP에 참여한 미국의 핵심 동맹국 중 한국을 제외한 일본, 호주, 뉴질랜드는 CPTPP에도 발을 걸쳐 놓은 상태다. 앞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CPTPP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 결정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 조야(朝野)에선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17일 미국의 소리(VOA)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민주주의로 남으려면 중국의 영역 아래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