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이 차질을 빚자 정부는 미국 모더나 본사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공급 차질에 항의하고 제 때 공급이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대표단은 당초 공언과 달리 국내 공급 시기와 물량을 확정하는 구체적 성과 없이 빈손으로 귀국했다. “최대한 제 때 공급토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우리 정부 대표단은 4명이 방문했지만 모더나사에선 담당 임원 1명만 현장에 나왔다. 말로는 모더나측의 사과를 들었다고 했지만, 사과 보단 사정을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 정부가 애초 모더나와 백신 계약을 할 때 3분기 이후 연말까지 2000만명분을 들여오기로만 하고,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의 물량을 들여올 지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신 도입을 늦추다 뒤늦게 서둘러 계약하다 보니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모더나사 CEO와 통화를 해서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마치 모더나 백신이 당장 쏟아져 들어올 것처럼 자랑한 것이다.

그런데 모더나 백신은 3분기 들어서도 찔끔 찔끔 들어왔다. 정부가 밝힌 것과 달리 세 차례나 공급이 지연됐다. 결국 실제 도입량은 당초 얘기한 물량의 1~2% 정도에 그쳤다. 정부는 구체적인 월별 도입 계획이 얼마냐는 질문에 “백신 도입은 비밀 계약이라 밝히기 힘들다”는 변명만 되풀이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월별 도입 계획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은 졸속 계약이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부가 ‘비밀 계약’이라는 핑계로 졸속 계약을 고의적으로 숨겨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몰랐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직접 통화를 해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했으니 이후 계약 내용을 자세히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백신 도입 자랑을 했으니 굴욕 계약 사실을 알고도 국민들을 속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모더나 등과의 백신 협력식에 참석했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졸속 계약을 몰랐다고 해도 문제다. 국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게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직무인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이란 지적이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비판을 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모더나가 잇단 공급 차질을 빚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문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화이자는 순조롭게 도입되고 있다. 화이자 도입에는 삼성 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정부 안팎에서 정설처럼 나도는 얘기다. 화이자 계약과 공급은 정상적인데 왜 유독 문 대통령이 개입한 모더나는 저 모양이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10월까지 70만명에 대해 2차 접종을 맞힐 수 있다”고 큰소리 쳤다. 문 대통령도 “한국을 백신 생산 허브로 만들겠다”고 했다. 현재 처한 우리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장밋빛 전망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 일각에선 청와대와 방역 당국이 올해 연말과 내년 상반기 백신 공급 대책에서도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이스라엘 등 백신 선진국에선 델타 변이에 대처하기 위해 3차 접종인 부스터샷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 등에서 ‘외국 백신 제약사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국내 자체 백신 개발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개발하는 백신이 임상 3상에 들어간 것을 염두에 두고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은 임상2상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3상은 비교임상으로 진행된다. 비교임상은 외국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은 간이 임상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용인받는 백신 개발이 되겠느냐는 우려가 적잖다. 작년 하반기 정부의 백신 도입이 늦어진 것은 국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과신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국내 제약사들이 “백신·치료제를 연내 개발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자 청와대가 이것만 믿고 백신 도입 계약을 미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