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청래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강경파의 입법 독주로 12일 청와대와 국회 일정이 전부 파행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조계와 야당이 반대하는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을 단독으로 기습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오찬 회동은 무산됐고, 대미투자특별법 특위의 첫 회의도 시작 20분 만에 중단됐다. 국회 본회의는 국민의힘 불참 속에 진행됐다.

정치권에선 “설을 앞둔 청와대와 국회의 협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정 대표가 밀어주고, 강경파 일색의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이 드라이브를 건 사법 개편안 처리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말이 나왔다. 여권 내에서도 정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로 당내 반발에 부딪히자 다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기 위해 이른바 ‘개혁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 민주당 강경파 법사위원들은 지난 11일 늦은 밤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을 강행 처리했다. 두 법안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빨리 처리하라”고 재촉하는 것들이다. 여권 관계자는 “법사위 강경파 의원들이 설 연휴 전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도 강성 지지층 어필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대표도 이들 법안과 이미 법사위 문턱을 넘은 법 왜곡죄 등 3대 사법 개편안에 대해 여러 차례 “흔들림 없이 2월 안에 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정권의 사법부 장악 법안” “이 대통령 재판 뒤집기 2중, 3중 장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오찬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했고, 국회 본회의 보이콧을 결정했다. 이후 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만 참석한 국회 본회의에선 상속권을 상실하는 ‘패륜(유기·학대 등) 상속인’의 범위를 부모 등 직계 존속에서 배우자와 자녀 등으로 확대한 민법 개정안,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필수의료 특별법’ 등 63개 민생 법안이 처리됐다.

여야 대표는 서로를 비판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정말 노답”이라고 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청와대가 법사위에서 법을 강행 처리할 것을 몰랐다면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엑스맨’이냐”며 설전을 벌였다.

민주당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도 ‘강경 일변도’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일부 강경파 법사위원들은 ‘공소청의 장(長)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조항을 공소청법에 넣으려는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의 입장에 대해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헌법에 검찰총장이라고 쓰여 있다”며 “그런데 헌법에 어긋나게 검찰총장 없애버리면 되느냐”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 측은 검찰총장 명칭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당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강경파들이 “검찰총장 명칭을 유지하면 안 된다”며 어깃장을 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도 법사위 내 민주당 강경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과 원내 지도부가 정무적 판단 없이 강경파에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정 대표와 강경파가 한 몸처럼 개혁이란 이름의 위헌 소지가 있는 문제적 법안들을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유는 딱 하나다. 개혁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법사위 강경파들의 움직임을 묵인하는 것이 오는 8월 당 대표 선거에서 연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민주당에선 공개적으로 강경파를 때리는 의원은 없는 상황이다. 이날 비공개 의원 총회에서도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한 중진 의원은 “속으론 싫지만 개딸에게 좌표가 찍힐까 봐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며 “특히 친여 유튜버 김어준이 미는 법안들 아니냐”고 했다.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선 “장 대표가 법사위 상황을 알면서도 청와대 오찬에 참석하겠다고 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 문제로 여권 내 갈등이 폭발한 데다 청와대의 당무 개입 의혹까지 나온 상황에서 오찬 제안을 덜컥 받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동욱 최고위원도 이날 “우리 당 대표가 결코 가서 들러리 서서는 안 된다”며 오찬 참석을 반대했다. 오찬 예정 시각 1시간 전에 갑자기 불참을 통보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분간 영수 회담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