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했던 ‘지방선거 전(前)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이 무산됐다. 민주당은 10일 합당 논의를 중단하고 6·3 지방선거 이후 추진하기로 했다. 정 대표가 지난달 22일 ‘지방선거 전 합당’을 제안한 지 19일 만으로, 친명(친이재명)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반발에 시점을 늦춘 것이다. 정 대표는 “제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다”며 사과했다. 여권에서는 “정 대표 리더십이 상처를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 대표는 이날 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후 “지방선거 전 합당 논의를 중단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조국혁신당에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 준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면서 “지방선거 후 추진위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한다”고 했다. 일종의 합당 수임 기구를 설치해 실무 논의를 하고, 지방선거 이후 합당한 후 8월 전당대회를 치른다는 계획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결정에 대해 조국혁신당은 11일 오전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앞서 친명계는 이달 초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은 중단하되 숙의를 거쳐 지방선거 후 합당을 준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황명선 최고위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합당은 지방선거 후로 미루고 수임 기구를 즉각 설치해 ‘준비된 통합’으로 가자”며 “지방선거 이후 곧바로 추진 가능한 상태로 준비하자”고 했다. 한준호 의원도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당원 참여형 공식 논의 기구를 설치해 충분한 숙의를 거치자”며 “합당의 필요성과 한계, 정치적 효과 등을 점검한 뒤 지방선거 이후 최종 결정을 내리자”고 했다.

◇정청래, 8월 당권 전초전서 밀려… 리더십 타격

‘지방선거 전 합당 무산’은 사실상 이날 오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정됐다. 민주당 의원 162명 중 20명 가까이 발언했는데, 지방선거 전 합당에 찬성한 의원은 친명계 김영진 의원뿐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합당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지방선거 전 합당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의원들은 대체로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현 상황에서의 합당 추진은 명분은 있더라도 추진이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박홍근 의원은 “정청래 대표가 합당 추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선 합당의 명분도 동력도 약하다”고 했다. 합당 찬성파인 박지원 의원도 “꼭 이겨야 하는 서울·부산·대구시장 선거에서 진보 계열 정당이 독자 후보를 낸다면 민주당 입장에선 뼈 아플 것”이라면서도 “과정과 절차가 매끄럽지 못해 당내 반발이 있는 만큼 지방선거 이후로 하자”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는 의원총회를 마치고 “최고위원들과 잘 협의해서 결론을 잘 내겠다”고 했다. 그 뒤 정 대표는 이날 밤 최고위를 소집해 지방선거를 마친 뒤 합당을 추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 대표는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아쉬움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면서도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통합 논란보다 화합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로써 3주 가까이 이어진 민주당 ‘합당 내홍’은 어느 정도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대표의 제안이 의원들의 집단 반발로 인해 무산된 만큼, 정 대표 리더십이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2일 조국혁신당 합당을 제안한 직후 친명계 최고위원과 의원들이 “사전 논의가 없었다”고 반발하자 정 대표 측은 “합당 추진은 청와대와 조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버 김어준씨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친명계를 비롯한 다수 의원들이 시기와 절차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시간이 지나자 합당 문제는 ‘친명 대 친청(친정청래)’의 대결 양상을 띠기 시작했고 여당 지지자들도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대표는 합당 찬반을 묻는 당원 여론조사를 제안했지만 “사실상 합당 절차를 개시하려는 것”이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정 대표는 이날 지방선거 전 합당 논의 중단을 밝히면서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다. 당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정 대표는 지난 9일 전준철 변호사 2차 특검 후보자 추천 논란으로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했다. 이틀 연속 사과를 한 셈이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의 이번 합당 내홍을 올 8월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 대표를 향해 전방위적 공격이 이어지는 건 결국 8월 전대에서 연임 도전이 유력한 정 대표에 대한 견제 아니겠느냐”며 “그 전초전에서 정 대표가 한번 꺾인 셈”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선 지방선거를 각자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조국혁신당과의 선거 연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합당 논란 속에서 민주당 친명계 의원들이 조국혁신당과 감정 섞인 설전을 벌이며 대립했기 때문이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선임대변인은 이날 YTN라디오에서 “우리는 (민주당 내홍으로) 상당히 몸살을 앓은 피해자다. 민주당에서 적절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우당(友黨)으로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함께하고 있었는데 흠집이 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