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조국혁신당 합당 제안이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합당 제안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청(黨靑) 간 교감 아래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23일 최고위원 회의에 불참한 데 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정 대표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한다고 비판했다. 합당 자체보다는 추진 과정에서 정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오전 충북 진천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 회의는 친명계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이 불참했다. 전날 정청래 대표가 사전에 논의 없이 조국혁신당 합당을 제안한 데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정 대표는 “어제 저의 합당 제안으로 놀라고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았나 보다”라며 “사전에 충분히 공유해 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대표가 먼저 제안하지 않고서는 지방선거 전에 시간상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사과할 각오로 제안했다”며 “전(全) 당원 투표에서 가결되면 (합당으로) 가는 것이고 부결되면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의 유감 표명에도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대표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이미 합의해 놓고 최고위엔 발표 직전 일방 통보했다”는 취지로 비판하며 정 대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정청래 사당이 아니다‘라며 “월권” “직권 남용”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 대표를 비판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도 이날 긴급 회동을 하고 “독단적 합당 추진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문을 채택했다. 입장문에는 초선 68명 가운데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친명계인 모경종·이건태 의원 등은 기습적인 합당 추진을 비판하는 의견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냈다.
청와대가 “양당(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평소 지론”이라고 한 상황에서 여당 내 친명계가 일제히 반발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정 대표의 처리 방식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양당 통합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 대표가 기습적으로 통합을 제안하면서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 불필요한 의심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당내 사전 논의 없이 합당 제안을 하면서 정 대표와 조국 대표 사이에 따로 뭔가 오간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고 했다.
정 대표가 논쟁적 사안을 발표하며 청와대를 연관시킨 데 대한 불만도 나왔다. 전날 통합 제안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정 대표는 “이번 합당 제안은 당청 간 조율을 통해 결정됐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당 안팎에서 “이 대통령의 정치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민주당은 23일 오후 “정청래 대표는 합당 제의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전혀 논의한 바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밝혔다. 발표 전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알렸을 뿐 이 대통령과 구체적으로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정 대표의 합당 제안에 공개 찬성 의사를 밝힌 민주당 의원은 박지원·신정훈·최민희 의원 등 소수다. 정 대표의 합당 제안이 의원과 지지층 간 내홍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친여 방송인 김어준씨까지 나섰다. 김씨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욕먹을지라도 당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여기에 정 대표의 사익은 없다”며 정 대표를 두둔했다. 김씨는 “(합당은) 아래로부터 중지를 모으려 하면 이해 당사자들의 물러설 수 없는 전장(戰場)이 되기 십상”이라며 “어떤 사안은 리더가 결정하고 실무는 그 과정을 챙기는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지방선거 전 합당 성사가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대표의 공약인 ‘대의원·권리당원 모두 1인 1표제’ 재추진을 놓고 친명계와 친청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합당 문제로 지도부 균열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들이 중복 출마하는 것을 막으려면 3월 중순까지는 ‘후보 교통정리’와 합당이 마무리돼야 하는데, 당원 투표 등 당내 절차를 제때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