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과거 구의원들에게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의혹이 제기됐으나 당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2일 알려졌다. 당시 당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최근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 의혹까지 포함해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신속한 징계 심판을 요청한 상태다.

김 전 원내대표의 공천 헌금 수수 의혹은 총선 직전 같은 당 이수진 전 의원이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원내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인사들의 탄원서를 당대표실로 전달했는데, 이 탄원서가 윤리감찰단을 거쳐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회로 가면서 사건이 덮였다”고 주장했다. 해당 탄원서는 전직 동작구의원 두 명이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쓴 것으로, 자신들이 2020년 총선 전 김 전 원내대표 아내와 측근에게 각각 2000만원과 1000만원을 줬다가 총선이 끝난 후 돌려받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당시 검증위원장은 김 전 원내대표였다. 의혹 당사자에게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가 갔으니 사실상 자신의 의혹을 ‘셀프 검증’한 셈이다. 이때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의혹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고 김 전 원내대표가 이 전 의원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의혹은 흐지부지됐다. 김 전 원내대표는 탄원서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이후 고소를 취하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지도부에서 주요 역할을 하며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고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갑에 단수공천돼 3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에서도 “김 전 원내대표가 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1억 수수 의혹을 묵인한 데 이어 이 의혹까지 사실로 밝혀지면 여권 전체에 큰 타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2024년 ‘비명횡사’ 공천 주도한 김병기… 뒷돈 의혹 면죄부 받았나

민주당은 지난 1일 저녁 긴급 최고위에서 공천 헌금 1억 수수 의혹으로 탈당한 강선우 의원을 제명했고, 김병기 전 원내대표에 대해선 윤리심판원에 징계 심판 결정을 요청하기로 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일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원내대표 측이 구의원들에게 현금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 범위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김 전 원내대표의 금품 수수 의혹은 2024년 초 처음 제기됐었다. 당시 당대표실에 전달된 탄원서에는 구의원들이 2020년 총선 직전 김 전 원내대표 측에 3000만원을 줬다가 돌려받았다는 의혹, 김 전 원내대표 아내 이모씨가 서울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업무추진비 카드를 사용했다는 의혹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이씨가 2022년 7, 8월에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와 동작구 대방동 자택 근처에서 카드를 사용했다는 언급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 동작구의회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김 전 원내대표 자택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중국집에서 결제한 내역도 있었다.

한때 잊힌 이 의혹은 최근 강선우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경 서울시의원에게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재조명됐다. 당시 서울시당 공천관리위 간사였던 김 전 원내대표는 강 의원의 금품 수수 의혹을 듣고도 김 시의원에게 단수 공천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원내대표 본인도 비슷한 의혹이 있었고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주목받은 것이다.

김 전 원내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공천을 주도하며 당의 핵심 역할을 했다. 2022년 지방선거는 윤호중·박지현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2024년 총선은 이재명 지도부 체제에서 치러졌다. 김 전 원내대표는 총선 땐 후보자 검증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회 간사를 겸임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명횡사’ 공천은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김 전 원내대표가 칼을 휘둘렀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한 전직 의원도 “임혁백 공관위원장은 얼굴 마담이었고, 검증위원장 겸 공관위 간사였던 김 전 원내대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했다. 다른 전직 의원은 “김 전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일부 친문 등을 솎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라며 “친문은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이 대통령에게 신임을 얻은 김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까지 얻은 것 아니냐. 보좌진의 갑질 폭로에도 한동안 직을 유지한 데에도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뒤늦게 각종 의혹이 터지자 민주당에서도 “당시 지도부가 공천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한 전직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원내대표는 위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그걸 정리해서 실행한 사람”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공천 헌금 의혹 탄원서도 없었던 일로 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당시 지도부가 해명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김 전 원내대표의 자진 탈당과 의원직 사퇴, 제명도 거론된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성공을 위해서는 선당후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서 다시 살아오면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백혜련 의원은 “사실로 밝혀지면 의원직 사퇴가 당연하고 국회 차원의 제명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특검을 요구했다. 경찰이 지난해 11월 김 전 원내대표의 공천 헌금 수수 의혹과 관련한 탄원서 등을 제출받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도 비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솜방망이 징계 쇼로 넘어갈 생각 말고 대규모 공천 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자처하라”고 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당시 대표는 김병기의 공천 뇌물 범죄를 묵인하고 총선에서 김병기를 수족처럼 쓰면서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을 한 것”이라며 “특검에서 ‘이 대통령의 공천 뇌물 범죄 묵인’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김 전 원내대표가 전직 구의원들에게서 금원을 전달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한 고발장을 접수했다”며 “공공범죄수사대로 배당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 전 원내대표 관련 사건을 서울청 11건, 동작경찰서 1건 등 총 12건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