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소속이던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의 과거 행적 검증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동시에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 지도부가 당성(黨性·당을 위한 충실한 태도)만 강조하면서 축소 지향적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 후보자는 30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시절 집회에서 비상 계엄을 옹호했다는 지적에 대해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당시에는 제가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파성에 매몰되어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고 했다.
이 후보자의 태도 변화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 상당수는 “3선까지 한 당인(黨人)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리 주고 자아비판 시킨다고 따르느냐”고 비난했다. 앞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됐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가운데선 동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후보자의 이탈도 비판받을 점이 있지만,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장 대표가 “똘똘 뭉치자”는 구호만 반복하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지금 장 대표의 행동은 당을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운명 공동체처럼 묶어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우리 당이 (이념 지형에서) 오른쪽 끝으로 내달리는 가운데 민주당이 텅 빈 중원을 빈집털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4선의 이종화 충남도의원이 “국민의힘이 비상계엄 이후 지난 1년 동안 반성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탈당하기도 했다.
일부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들은 공개적으로 지도부 노선 변화를 요구했다.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장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구축이냐, 아니면 국민을 위한 정치냐,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 사이에서도 “‘윤어게인’을 넘어선 플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재선 의원은 의원 단체 대화방에 올린 글에서 이혜훈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신경질적 반응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여권에서) 우리 당을 영남 자민련(지역당)으로 만들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2·3 계엄 1주년에 대국민 사과를 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모임을 갖고, ‘대안과 미래’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25명이 소속된 이 단체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당 개혁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모임 간사인 이성권 의원은 “중도 보수에 있는 사람(이 후보자)이 이재명 정부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되돌아봐야 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