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일 국무회의에서 “개혁이란 본래 뜻이 가죽 벗긴다는 것”이라며 “갈등과 저항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 입법 과정에서 약간의 갈등과 부딪힘이 있더라도 국민 뜻에 따라서 필요한 일은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청래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만찬 회동에서는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여권에선 대통령이 민주당 강경파가 주도해 온 내란 전담 재판부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위헌 소지는 최소화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내란 재판부 법안의 연내 처리에 대한 당과 대통령실의 생각은 일치한다”고 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유튜브에 나와 “내란 재판부를 하자, 근데 2심부터 하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그게 더 지혜롭지 않냐(는 게 대통령 생각)”고 했다.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한 1심 재판이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내란 재판부는 2심부터 적용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내란 재판부 설치법은 1심과 항소심에 전담 재판부를 각각 2개 이상 설치하고 추천위원회가 지명한 판사들로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도 1심부터 적용하면 재판 지연이 우려된다며, 이 부분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 수석은 “‘지혜롭게 해라’ ‘자꾸 싸우는 방식으로 하는 게 개혁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게 대통령의 워딩”이라며 “당이 막 밀어붙이면 대통령은 ‘당이 요즘 자꾸 왜 이래요’라고 한다”고 했다. 또 “개혁하자는 취지에서야 (대통령실과 당이) 다른 게 뭐가 있겠냐”며 “민주당이 토론을 통해 합리적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신뢰한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 강경파가 주도해 온 내란 재판부와 법 왜곡죄 법안 등은 국회 본회의에 곧바로 상정돼 처리될 분위기였다. 하지만 “위헌이다”라는 법조계의 거센 반발과 민주당 우군(友軍) 역할을 해온 조국혁신당과 친여 단체들의 반대가 이어지자 “더 논의하겠다”며 처리를 보류한 상태다. 대통령실도 위헌 소지는 줄이는 게 좋겠다는 뜻을 민주당 원내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청래 지도부, 추미애 법제사법위 등 민주당 강경파는 내란재판부, 법 왜곡죄 등을 추진하며 ‘연내 입법’을 공언해 왔다. 지난 3일엔 이 법안들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자 법조계 등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 입장에선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반발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진보 성향 판사들이 주도해 왔다. 이런 법관대표회의마저 “위헌성 논란이 있고,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각을 세우는 조국혁신당이 ‘위헌 소지가 크다’고 한 것도 민주당으로선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국 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내란 재판부 법안에 대해 “위헌 소지를 없애고 2심부터 가동되게 하는 게 정도(正道)”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내란 재판부 등을 추진한다는 입장은 고수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지지층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이 문제 제기를 한 법무부 장관 등의 추천위원 추천권을 삭제하는 식으로 내란 재판부 법안을 ‘땜질 수정’ 정도만 할 가능성이 있다.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도 이날 김어준씨의 유튜브에서 “내란 재판부 설치법에 위헌 소지는 없다”며 “민주당이 너무 쫄아서 훅 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