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를 추진하면서 위헌 소지가 있는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이번엔 내란·외환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에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해도 예외적으로 재판이 중단되지 않게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법조계 등에선 “내란전담재판부 위헌 논란에 다른 위헌적 법안으로 방어벽을 쌓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은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내란·외환죄와 관련한 형사 재판의 경우 법원이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하더라도, 재판을 정지하지 못하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올려 심사했다. 헌재는 1개월 내에 위헌 여부를 결정하게 해놨다.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지난 1일 발의한 것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이 법 조항에 대해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하면, 재판을 중지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내란전담재판부는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 심판을 신청하고, 법원이 받아들여 재판이 중단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더라도, 재판부 법관들이 “이 재판부 설치가 위헌”이라며 위헌 심판 제청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 법조인은 “민주당이 위헌 법안을 또 위헌 법안으로 막겠다는 발상”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상상 초월 헌법 유린의 끝판왕”이라며 “내란전담재판부의 위헌성이 뻔히 예상되니 다른 위헌 입법으로 덮는다는 겹겹이 위헌 발상”이라고 했다.
◇내란 재판은 헌재 판단 불필요? 헌법 위에 민주당법
위헌 법률 심판 제도는 특정 법률이 위헌인지 헌법재판소에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헌법 심판 절차다. 재판 당사자가 재판부에 신청하고, 재판부가 받아들이면 헌재에 제청할 수 있다. 재판부 직권으로도 제청이 가능하다. 위헌 법률 심판이 제청되면, 재판은 정지된다. 위헌 법률 조항으로 재판 당사자가 기본권을 침해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될 경우 구속 상태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헌 심판을 내서 재판을 정지시킨 뒤, 구속 기한 만료로 석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추미애 의원이 내란·외환죄와 관련한 형사 재판의 경우 법원이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하더라도, 재판을 정지하지 못하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낸 것이다.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자체가 위헌 논란이 크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그 논란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위헌 소지 법안을 냈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추 의원도 페이스북에 “재판 정지 가능성을 이유로 내란전담재판부 자체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며 “내란전담재판부법과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패키지로 처리하면 모든 우려는 해소된다”고 썼다. 법관들 대부분이 내란전담재판부 자체를 위헌이라고 하고 있어, 이 재판부에 들어간 법관들조차 위헌 심판을 제청을 해 재판이 정지될 수 있다는 걱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해선 “아직까지 당론은 아니다”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5일 법사위 소위에서 반대했다. 천대엽 처장은 지난 3일 법사위에서도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헌법 42조에서 재판을 중지하도록 한 것은 적어도 위헌적 법률이라는 의문을 법원이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재판을 중지하는 게 헌법과 헌재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도 “재판의 판결 선고 이후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재판 정지 사유를 추가로 명시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면서도 “세심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법관 스스로 위헌이라 생각한 법률은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에 적용하지 않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며 “민주당 법안은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는 “사실상 한 사람(윤 전 대통령)을 겨냥한 법안”이라며 “헌법상 평등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위배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비법관이 다수인 사법행정위원회가 법관 인사·징계 등을 하도록 한 민주당 법안도 위헌 소지가 크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법권은 법원에 있고,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를 하도록 규정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것이다. 이인호 중앙대 교수는 “위헌적 법안으로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판사·검사·경찰이 법을 왜곡 적용하면 10년 이하 징역형 등으로 처벌하는 ‘법 왜곡죄’ 법안도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왜곡’에 대한 판단이 모호해 죄형 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 1심을 맡고 있는 ‘지귀연 재판부’ 등을 겨냥해 “무죄를 선고하면 법 왜곡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등의 법안을 연내 꼭 처리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3일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해 “국민 여론에 따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우리 입법부가 잘 행사할 것”이라며 사실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정청래 대표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 면전에서 뻔뻔하게 사법 개혁 반대 시위를 했다”며 “사법 쿠데타를 단호히 저지하고 연내 사법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이달 내 국회 본회의에서 재판소원제, 대법관 수 증원법 등도 전부 통과시킬 것”이라며 “위헌 소지 등 논란에 대해선 8일 정책 의총에서 논의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