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사법 행정 TF가 25일 사법부의 인사·행정 사무 등을 담당하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사법권은 법원에 있다는 헌법 규정을 위배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나, 일단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법조계 등에선 “과거 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의 사법부 장악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나왔다.
사법 행정 TF의 초안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이다. 초안에 따르면, 사법행정위원회는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비법관은 최대 9명이 포함된다. 법관 위원 중 대법원장 지명 법관은 1명이고 나머지는 전국법원장회의(1명), 전국법관대표회의(2명)가 추천한다. 헌법재판소장과 법무부 장관이 각 1명씩 추천하는 위원은 비법관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변호사·법학 단체, 법원공무원노조 등은 비법관을 추천하게 했다.
특히 초안은 ‘법관 인사’가 사법행정위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현재는 대법원장에게 법관 인사 권한이 있는데 초안대로 가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위가 만든 인사안에 도장 찍는 역할만 하게 되는 구조”라며 “각 법원의 주요 재판부, 영장 전담 판사에 이르기까지 외풍이 개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원장은 각 법원 판사 회의가 추천한 법관 중 선출하게 했다. ‘김명수 사법부’가 시행했다가 법원장 인기 투표제 논란이 일어 ‘조희대 사법부’에서 폐지한 것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다. 사법행정위가 법원장들에게 각 법원 행정을 위임하고, 중요 행정 사안은 각 법원 판사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치게 했다.
야권은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재판부를 향한 보복성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특검이 청구한 전(前) 정권 인사들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줄기각되자 사법부를 향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강성 지지층에서 구속 상태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 선고 전 구속 기한 만료(내년 1월 18일)로 석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위헌 논란이 있는 내란 전담 재판부까지 본격 추진키로 했다. 한 법조인은 “결국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만들고 내란 프레임을 이어가기 위해, 여당이 사법부 인사를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외부인사가 법관 임명 좌우… “남미·동구권 독재정권과 같은 방식”
민주당 사법 행정 TF가 25일 발표한 초안은 ‘대법원장 힘 빼기’에 집중돼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이 재판과 사법 행정에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사법 행정의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를 확립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TF 초안에 담긴 행정처를 대신할 사법행정위원회 구성을 보면, 친여권 인사들로 다수 채워 사법부를 인사 등으로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대법원 규칙으로 규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원조직법에 명시해 위상을 높이고, 법관대표회의가 위원 2명을 추천하게 한 것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진보 성향 법관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평이 많다. 김명수 사법부 시절엔 진보 성향 법관들이 법관대표회의 운영진 등을 장악했다.
현재는 법관대표회의 구성원 중 상당수가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김명수 사법부 시절 ‘전법회(전국법관대표회의) 전담 판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며 “TF 안이 시행되면 다시 이런 소수가 법관대표회의를 장악해 민주당과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원공무원노조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한 단체다. 법원노조는 3016명의 법원 공무원이 참여해 2360명(78.2%)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해 “대법원장직 수행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 24일 공개하기도 했다. 전체 법원 공무원은 약 1만5000명이다.
대한변협의 경우 ‘쿠팡 퇴직금 수사 외압’ 상설 특검이 임명된 직후인 지난 18일 김정욱 변협 회장이 쿠팡 상무 출신 변협 간부와 함께 민주당 서영교 의원과 오찬 회동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변협과 서 의원은 “쿠팡 사건과 전혀 무관한 만남”이라고 했다. 야권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김상환 헌재소장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친여 인사를 위원에 추천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TF 초안에 들어간 법관 인사 문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법관 인사는 각 법원의 주요 사건 재판부, 영장 전담 판사 등 법원의 주요 보직과 맞물려 있다. 이런 법관 인사 전반을 사법행정위의 심의·의결을 반드시 거치게 하고, 대법원장은 승인만 하게 해놨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전 정권 인사들의 내란 혐의 재판 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불허한 적이 있고, 현재 그의 내란 혐의 1심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를 교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란 특검 등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판사들도 문제 삼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선 법원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여권이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각 법원의 중요 사법 행정에 대한 자문 기구였던 판사회의를 심의·의결 기구로 격상하는 방안도 앞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판사회의는 김명수 사법부 시절 만든 것이다. 현재 다수 법관들은 판사회의에 큰 관심이 없고, 소수 법관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 법관은 “목소리 큰 소수 정치 판사들이 앞으로 각 법원 주요 행정을 주무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관들 사이에선 판사회의가 추천한 법관을 법원장으로 선출하는 ‘법원장 추천제’의 부활을 두고 “다시 법원을 선거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법원장 추천제는 김명수 사법부 시절 시행한 적이 있다. 당시 한 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청주지법원장에 ‘겹치기 입후보’를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법원장 추천제는 법관들이 열심히 재판할 동기를 없애 ‘재판 지연’을 초래한 원인으로도 꼽힌다. 그러나 TF는 “법원장 추천제와 재판 지연의 인과관계가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 TF는 퇴임 대법관이 대법원 사건을 5년간 맡지 못하게 하고, 법관 징계 최고 수위를 현재의 정직 1년에서 정직 2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냈다. 또 대법원장 비서실장도 비법관이 담당하게 했다.
한 변호사는 “헌법상 삼권분립 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며 “남미, 동구권 독재 국가의 사법부 장악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차베스 정권 때 사법부가 정권에 장악된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30일 비영리단체 월드저스티스프로젝트(WJP)의 ‘2025년 법치주의 종합 지수’에서 조사 대상 143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오르반 총리가 장기 집권 중인 헝가리는 지난 2023년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정부가 해임할 수 있게 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보조금 동결 등 제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