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국(敵國)’이 아닌 ‘외국(外國)’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처벌도 할 수 있게 하는 간첩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는 조속 처리를 목표로 하는 10대 법안에 간첩법을 포함시키고 여당에 연내 처리를 촉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뜻도 반영됐다고 한다.

간첩법은 형법 98조를 말한다. 적국을 위해 간첩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할 때,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할 때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적국은 북한으로 해석된다. 작년에 중국인들이 드론을 띄워 우리 정보기관이나 군 시설 등을 촬영한 일들이 있었는데, 형법상 간첩죄 적용은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작년 간첩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간첩법이 개정되는 것이었다. 법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이 법안을 올리기 전 돌연 “더 논의해 봐야 한다”고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은 당시 “스파이 행위 처벌 관련 군사기밀보호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 등 다른 관련 법안도 함께 고쳐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중국 눈치 보기냐”며 반발했다.

그러던 중 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논의는 더 미뤄졌다. 국민의힘은 지난 2~3월에도 민주당이 간첩법 처리를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예상치 못한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공청회 일정을 잡고 토론하자고 해서 보류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여권 관계자는 “진보 단체 등에서 간첩법 개정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전달했기 때문에 늦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간첩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간간이 밝혀왔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6월 후보자 시절 국회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현행법상 적국 외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재해 관련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조만간 민주당 원내 지도부에 간첩법 개정안 처리를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도 정부의 ‘간첩법 연내 처리’ 뜻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정청래 대표가 작년에 간첩법 개정을 미루는 데 찬성했지만 이번엔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처리하겠다는데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