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본예산 시정연설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보이콧한 가운데 4일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한 뒤 텅 빈 국민의힘 의석을 가리키며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했다. 3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첫 시정연설을 했을 때와 공수만 바뀌고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李 연설 때 텅 빈 野 의원석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국민의힘은 전날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항의하며 시정연설에 불참했다(오른쪽 사진). 이 대통령은 텅 빈 국민의힘 의석을 가리키며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국민의힘은 이날 이 대통령의 국회 도착 시간에 맞춰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규탄 대회를 열었다. 전날 내란 특검이 계엄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에 대해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강력 항의에 나선 것이다. 의원들은 검은색 정장, 넥타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슴에는 근조 리본을 달았다. ‘야당탄압 불법특검’ ‘명비어천가 야당파괴’라고 적힌 피켓도 들었다. 일부는 이 대통령을 향해 “범죄자” “꺼져라” “재판받으세요”라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관 앞까지 이 대통령을 맞으러 나가자 “체통 지켜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3년 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이재명 당시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에 반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에 불참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의원 총회에서 “이제 전쟁이다. 우리가 나서서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의원 전원 명의의 성명을 내고 “이재명 정권의 치졸한 야당 탄압·정치 보복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부터 기립박수를 치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환대했다. 이 대통령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날 이 대통령은 약 22분간 연설에서 ‘AI’란 단어를 총 28번 언급했다. 그다음으로는 ‘국민’(21회), ‘투자’(11회), ‘성장’(11회), ‘미래’(9회), ‘협력’(8회), ‘경제’(6회), ‘국회’(6회), ‘K이니셔티브’(5회) 순이었다. 민주당은 33차례 박수를 쏟아냈고, 연설이 끝난 뒤 도열해 ‘이재명’을 연호했다.

연설 전 이 대통령은 20여 분간 우원식 의장과 환담을 나눴는데, 민주당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 등 5부 요인들도 동석했다. 이 대통령은 “대법원장님을 포함해 헌재, 선관위, 감사원 등 기관장 여러분께서 많이 관심 갖고 지원해 주셔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예, 예”라고 답했다. 이 자리엔 장동혁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불참했다. 다만 개혁신당은 이날 시정연설엔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