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 기관 증인들이 지난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언쟁을 지켜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역대 최악 저질 국감”이라는 오명 속에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야 간 정책 논의는 실종되고 정쟁만 이어진 가운데, 상임위 곳곳에선 막말과 고성 속 파행이 거듭됐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이번 국감은 ‘조요토미 희대요시(조희대 대법원장+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시작해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딸 결혼식 논란으로 종결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지난달 30일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중 14곳의 국감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달 초 겸임 위원회인 운영위·정보위·성평등가족위를 끝으로 국감은 종료된다. 시민 단체인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중간 평가에서 “역대 최악의 권력분립 파괴 저질 국감이었다”면서 F 학점을 매겼다. 이들은 문제 인물로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과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꼽고 각각 ‘편파 진행’ ‘무소불위’ 위원장으로 표현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피감 기관 180곳은 앉아있다 갔다… ‘국감 무용론’ 나와

이번 국감 내내 상임위원장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진행은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국감 첫날인 지난달 13일 관례를 깨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 뒤 여당 측의 일방적 질문을 받게 했다. 약 90분간 민주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타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이른바 ‘조요토미 희대요시’ 합성 사진을 대법원장 면전에서 흔들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장 모욕 주기가 도를 넘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추 위원장이 별다른 근거 없이 야당 의원들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것도 ‘편파 진행’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자녀 결혼식 관련 논란이 제기되자 국감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취재진에게 퇴장을 명령한 것도 “기자 추방”이라고 봤다. 최 위원장은 국감 기간에 치른 딸 결혼식에 대해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신경 못 썼다”고 하는 등 각종 해명이 논란이 돼 과방위 정책 이슈를 덮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자신에 대한 보도가 편향적이라면서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켜 여권 내에서도 “위원장직을 사퇴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지난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 중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문자메시지 공개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국감 진행을 해야 할 상임위원장의 ‘마이크 독점 현상’도 두드러졌다. 추 위원장은 네 차례 감사에서 의원 평균보다 많게는 3.9배 발언 시간을 가졌고, 최 위원장은 방송미디어통신위 대상 감사에서 평균 시간의 4.21배 동안 마이크를 잡았다. 통상 위원장은 감사 진행을 위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하나, 추미애·최민희 위원장은 그보다 많았다.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 질의도 “평균 이하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제1 야당으로서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30일 법사위에선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을 향해 “꽥꽥이”라고 했고, 곽 의원이 서 의원을 향해 “서팔계”라고 맞받아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14일 과방위 국정감사에선 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뜬금없이 “지난달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이 내게 ‘에휴 이 찌질한 놈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공개하면서 막말이 오갔다. 박 의원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된 데 항의하면서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라고 응수했다. 이후 비공개회의 때도 두 의원은 “한주먹거리” “너 내가 이긴다” “옥상으로 따라와”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운영위에선 여야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국감 출석 여부를 두고 국감 시작부터 끝까지 싸웠다. 결국 여야는 김 실장에 대한 증인 채택 합의에 실패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곽규택 등 의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 진행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 기사가 쏟아지자 민주당은 국감 기간(10월 13~30일)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에 19차례 제소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에 따르면 민주당은 8차례 조정 신청을 냈다. 이와 별개로 민주당 소속인 최민희(6건) 과방위원장, 추미애(4건) 법사위원장, 김용민(1건) 법사위원도 비판적 보도를 문제 삼았다. 김승수 의원은 “무차별 언중위 제소로 ‘언론 입 틀어막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가운데 답변 한번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증인·참고인도 많았다. 이번 국감이 시작된 지난달 13일부터 중반부인 22일까지 총 474곳이 기관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이 가운데 180곳(38%)에는 단 한 차례도 질의하지 않았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입법부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감시 권한을 포기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행정부 견제라는 국감의 의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정치권 일각에서 국감 무용론까지 나오는 만큼 제도적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상임위원장 권한을 (축소) 조정하고, 증인·기관의 발언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최 위원장 딸 결혼식 관련 질의를 듣고 있다. /남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