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3일 열릴 국회 국정감사에서 7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부르겠다는 증인 중 기업인이 105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일부 상임위원회가 증인 명단을 의결하기 전이라, 향후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105명 중 89명은 이미 의결 절차를 거쳤다.
29일 본지가 국회 7개 상임위원회(정무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문화체육관광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보건복지위·환경노동위·국토교통위)가 의결하거나 의결을 추진 중인 국정감사 주요 증인 명단을 확인한 결과, 7개 상임위에서만 최소 105명(중복자 포함)의 기업인이 증인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집계됐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과방위·산자위·복지위 등 최소 3개의 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과방위는 무려 27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해킹 사태와 사장 교체 등을 이유로 KT에서만 대표 등 임원 7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장 루이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대표와 우영규 카카오 부사장, 레지날드 숀 톰슨 넷플릭서비스 코리아 대표, 윌슨 화이트 구글 아태 대외정책 글로벌 디렉터, 허욱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등 외국계 기업도 가리지 않았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 역시 대규모 해킹 사태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토위는 주요 건설사 사장 상당수를 증인으로 불렀다. 주된 이유는 건설사고를 묻기 위해서였다.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박세창 금호건설 부회장 등이 증인 명단에 올랐다. 서희건설은 이봉관 회장과 김원철 대표에게 주택공급과 건설정책 등 제도 개선을 묻겠다며, 현대건설은 가덕도 건설공사 파기 문제와 대통령 관저 공사 특혜 의혹을 묻겠다며 이한우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산자위는 온라인 플랫폼의 국내 소비자 정보 보호 방침에 대해 묻겠다며 신세계 정용진 회장을 증인으로 부를 방침이다. 또, 아성다이소와 무신사 등 중견기업 대표들도 불공정성을 점검하겠다며 증인으로 부른다.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와 이수진 야놀자 대표 등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복지위는 리베이트 의혹 등을 이유로 당초 제약사의 대표 및 회장 등을 다수 부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29일 현재 제약사는 제외하고 정지영 현대백화점 대표와 윤석준 우아한형제들 총괄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것을 논의 중이다.
일부에선 ‘어떤 목적으로 기업인을 부르려는지 불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집계된 7개 위원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민들의 유심 교체 대책을 묻겠다며 SK텔레콤은 최태원 SK회장을, LG유플러스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KT는 김영섭 대표를 부르는 것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최종 의결은 되지 않았다.
국회 안팎에선 올해 기업인을 부르려는 분위기가 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과거 기사와 국회 자료 등을 종합해보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 수는 지난 17대 국회 때는 평균 52명 수준이었으나 18대 국회 때 평균 77명으로 올랐고, 19대 때는 평균 124명, 20대 국회 때 155명으로 급증하는 분위기다. 2023년의 경우 92명 정도를 기록했다. 올해의 경우 집계가 되지 않은 다른 위원회까지 합하면 예년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기도 했고, 반기업 분위기가 올해 유독 강한 것 같다”며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서의 제보도 다른 해보다 많이 오는 분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인 무더기 증인 소환이 국정감사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정감사의 애초 취지는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의 국정(國政) 활동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현행 국정감사·조사법은 국감 대상을 국가 기관, 특별시나 광역 시·도, 공공기관 등으로 규정한다.
국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국감 시즌만 되면 화제가 되는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보좌관의 능력이 된지 오래”라며 “실제로 부를 생각이 없어도 기업 길들이기 등의 목적으로 오너나 대표급을 명단에 일단 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