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정부·더불어민주당은 7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원전 산업 정책은 기후부가 맡지만 원전 수출은 기존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기로 했다. 업계와 학계에선 “탈(脫)원전 시즌 2를 하자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고위 당·정·대 협의회를 마친 뒤 “그간 탄소 중립은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서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이 강조돼 왔다”고 했다. 윤 장관은 “일관성 있고 강력한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환경부와 산업부의 에너지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하겠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산업부 2차관 산하에 있는 에너지 산업 정책 기능은 기후부로 이관된다. 석유·가스·석탄·광물 등을 다루는 자원산업정책국과 원전 수출 정책을 담당하는 원전전략기획관 조직만 산업부에 남긴다. 화석 연료를 제외한 원전·재생에너지 산업 정책과 전력 산업 전반을 기후부가 다룬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 같은 산업부 산하 전력 공기업들도 기후부 밑으로 간다.

기후부 장관은 김성환 현 환경부 장관이 맡을 전망이다. 김 장관은 이날 당정대 회의에도 참석했다. 앞서 김 장관은 자신의 인사 청문회에서 “원전 추가 건설도 필요하다”고 했으나, 그가 과거 탈원전을 주장한 인물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강창호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본지에 “과거 대놓고 ‘탈원전’을 외쳤던 인물인 김 장관 도마에 원전을 올려놓고 요리하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한수원 노조는 당장 8일부터 대통령실·국회 앞에서 반대 집회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업계와 학계에선 기후부에 대해 각종 우려를 쏟아냈다. 기후부의 탄생으로 에너지 정책이 ‘탄소 중립’에 초점이 맞춰지면,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 등으로 인한 전기·가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 기조가 ‘감(減)원전’인 만큼 기후부가 원전 발전량까지 줄이면 전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원자력보다 비싼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정부가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한 AI(인공 지능) 산업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AI 산업 등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데 전력 생산 비용 증가로 이 산업들이 제대로 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에 수백조 원이 넘는 투자도 불가피하다고 업계는 전망한다.

기후부와 산업부가 원전 건설과 수출 기능을 각각 분담하는 이원화 구조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기후부가 원전 정책을 담당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및 기술 개발 투자 등에 소극적으로 나서 원전 생태계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기후부가 원전 정책을 주도하면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규제 위주가 되지 않겠냐”고 했다. ‘에너지 믹스(mix)’가 중요한 시점에 에너지 정책을 화석 연료와 무탄소 연료로 분리해 산업부와 기후부가 각각 관리하게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국 61개 대학 225명의 교수가 모인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기후부 개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경제기후보호부를 만든 독일이나 2008년 에너지기후변화부를 출범한 영국 모두 ‘에너지 비용 급등’과 ‘제조업 경쟁력 붕괴’라는 후폭풍을 겪고서야 2023년에 에너지 중심으로 부처를 재편한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산업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방안을 반대하는 의원이 꽤 있었다. 그러나 당정은 각계의 목소리를 듣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에너지 정책 기능을 환경부에 고스란히 넘겼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