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KBS·MBC·EBS의 이사진 구성 등을 바꾸는 ‘방송 3법’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27일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는 법안 처리에 돌입했다.
기존 방통위를 없애고 새 기관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만드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8월까지가 임기인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기는 자동 종료된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다음 달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이진숙 위원장 축출을 위해 입법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선 “헌법상 ‘공무원 신분 보장’을 위배한 것으로 위헌(違憲)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 불참 속에 국회 과방위 소위를 열고 방통위법 개정안,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 법안 등을 심사했다.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방통위법 개정안은 방통위원을 9명으로 늘리고 대통령 지명(3명), 여당 추천(3명), 야당 추천(3명)으로 꾸리는 내용 등이 담겼다.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이 낸 시청각미디어통신위 설치법은 방통위를 없애고, 새 기구를 만든다는 게 골자다.
민주당은 이날 소위에서 두 법안을 합치고 조정했다. 김현 의원은 소위를 마친 뒤 “방통위 정상화를 위한 제정법을 곧 발표하겠다”며 “법안 이름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또 방송미디어통신위를 구성할 위원 수에 대해 “총 7명이며 위원장 포함 상임위원을 3명, 비상임위원은 4명으로 구성할 것”이라며 “대통령 지명, 여야 추천 몫 수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7명의 위원 구성은 ‘대통령 지명 2명, 여당 추천 3명, 야당 추천 2명’으로 ‘여권 편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현 방통위 위원 구성은 ‘여3 대 야2′인데 만약 ‘여5 대 야2′가 된다면 기존 방통위의 ‘합의’ 구조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방통위를 없애고 새 조직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 위원장을 내쫓는다면 헌재에서 위헌 여부를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헌법 7조에 규정된 ‘공무원의 신분 보장’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이사들을 법 시행 후 강제로 임기 종료시키는 내용이 담긴 ‘방송 3법’ 역시 이런 이유로 위헌 논란이 있다.
헌재 결정례도 있다. 1980년 군부는 국회를 임시 입법 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로 대체하기 위해 국보위법을 만들면서 기존 국회 공무원은 후임자가 임명되면 해임하게 규정했는데, 1989년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상 모든 국민은 공무 담임권을 가지며, 공직자일 때 강제 퇴직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민주당의 입법은 심각한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방송위원들의 임기(3년)는 2009년까지였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방통위 설치법이 제정돼 2008년에 임기가 종료된 사례가 있어 위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 담임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되면, 헌재는 기존 임원들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게 할 만큼 이 법안이 ‘공익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것”이라며 “입법부가 과도하게 행정부의 인사권에 개입하는 게 헌법상 삼권분립을 위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감정 섞인 입법”이란 비판도 나온다. 지금 국회 과방위를 주도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이진숙 위원장은 지난 1년여간 각종 현안을 놓고 충돌했다. 민주당은 작년 8월 2일 이 위원장 탄핵 소추안을 강행 처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이를 기각했다.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은 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 위원장은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