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맞아 첫 사면을 할 예정인 가운데, 법무부가 사면 대상에 ‘중대 범죄’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정치인들까지 포함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사면권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역대 대통령들은 ‘사회 통합’이란 명분하에 이 권한을 이용해 정치인 사면을 해준 경우가 많았다. 이번 정부도 같은 일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사면권이 ‘정치인 면죄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일반 국민보다 훨씬 헐거운 기준을 적용한 ‘정치 거래’ 사면을 남용하며 사법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법무부는 지난 7일 범여권 인사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부부, 최강욱 전 의원, 윤미향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을 사면·복권 대상자로 선정했다. 야권 인사로는 홍문종·정찬민·심학봉 전 의원을 포함시켰다. 이들 모두 유죄 판결을 받게 된 혐의, 남은 형기, 수사·재판을 받을 당시의 행동 등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픽=박상훈

조국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작년 12월에 징역 2년형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조 전 대표는 2019년 12월 기소됐는데 대법원 선고까지 5년이 걸렸고, 지난해 12월 16일 수감돼 아직 전체 형기의 32% 정도만 채운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지난 대선 때 후보를 내지 않은 조국혁신당에 대한 보은 사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자녀 입시·사모펀드 비리’ 등의 사건으로 징역 4년을 받아 만기 출소한 조 전 대표의 아내 정경심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 왔다. 조 전 대표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최강욱 전 의원도 마찬가지로,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자신이 ‘표적 기소’됐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도 여권은 이들이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라며 사면·복권을 주장하고 있다.

◇입시 비리·위안부 횡령도 ‘면죄부’… 윤미향 “욕하는 것들 참 불쌍”

조국 전 대표만큼이나 논란이 되는 인물은 윤미향 전 의원이다. 윤 전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만든 단체인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이다. 그 이력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민주당 위성 정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그해 5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전 의원의 후원금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윤 전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모은 후원금을 요가 강사비로 쓰거나 발 마사지숍, 식당, 술집, 커피 전문점, 마트, 고속도로 휴게소, 공항 면세점, 동물 병원 등에서 쓴 점 등이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이런 식으로 윤 전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7957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 판결을 내렸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직원들의 반대에도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5명의 특별 채용을 강행한 혐의로 2021년 12월 기소됐다. 그 와중에 2022년 6월 교육감 선거에 나가 3선에 성공했고, 임기 2년 뒤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아 교육감직을 박탈당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정상적인 정치 환경에서 이런 여권 인사들을 사면했다면,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 국정 지지도가 높고, 야당이 지리멸렬하니까 밀어붙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면·복권 대상에 거론되는 야권 정치인들은 뇌물·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인물들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정찬민 전 의원은 3억5000만원대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그가 용인시장 시절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일대에서 고급 타운하우스 건설을 추진하던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인허가 편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친형 등 지인 3명이 땅 4필지를 시세보다 3억5200만원 싸게 얻도록 했다는 혐의가 인정됐다.

홍문종 전 의원은 의원 시절 사학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교비 52억원을 횡령한 혐의, IT 업체 관계자들에게 뇌물 47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받았다. 심학봉 전 의원은 의원 시절 총 1억여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4년 3개월을 확정받았다.

한 법조인은 “정부가 여야 균형을 맞추려고 죄질이 나쁜 정치인들도 사면·복권에 넣은 것”이라며 “첫 사면은 통상 정치인을 배제하고 민생 사범 중심으로 사면하는데, 이번 정부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측근이나 여권 인사를 사면·복권하면서 야권 정치인을 포함시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2022년 5월 취임 직후 군사 기밀 유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임명했다. 2022년 10월 김 전 차장이 벌금 300만원의 선고 유예를 확정받자, 2개월여 후인 2023년 신년 특사에서 그를 사면해줬다. 그러면서 당시 야권 인사들 사면·복권도 함께 해줬다.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하는 등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2023년 8·15 특별사면 때 사면·복권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3개월 만이었다. 국민의힘은 김 전 청장의 유죄 확정으로 공석이 돼 그해 10월 치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그를 재공천했다가 큰 차이로 민주당에 패배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법적으로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유기징역은 형기의 3분의 1, 무기징역은 10년이 지나야 사면 신청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부패·선거·테러 범죄 등은 사면을 금지한다. 핀란드는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때 반드시 최고재판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우리는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사면심사위원들을 임명하게 돼 있어, 대통령 의사가 다 반영되는 구조”라며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을 받은 중립적이고 권위 있는 학계·법조계 인사들로 사면심사위를 구성해서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형기를 3분의 2 이상 채우고, 사회에 나와서 해악을 끼칠 염려가 없고, 수형 생활이 어려울 만큼 건강상 문제가 있는 등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에 사면하도록 사면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