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6일 주식 차명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춘석(4선·전북 익산갑) 의원의 당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미애(6선·경기 하남갑) 의원을 지명했다. 증시 부양을 내건 여권에서 주식 관련 대형 악재가 터진 가운데 ‘강성 검찰 개혁론자’로 불리는 추 의원을 앞세워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의 의원직 제명과 함께 여권의 내부 정보 이용 투자 의혹을 규명할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휴가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이 의원에 대한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징계를 회피할 목적으로 징계 혐의자가 탈당할 경우 징계 처분을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이 의원을 당에서 제명했다. 이 의원은 전날 차명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자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정 대표는 “국민께 정말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국회의원들의 기강을 확실히 잡겠다”고 했다. 전날 저녁 이 의원 제명이 필요하다는 당내 의견이 전달됐고, 정 대표가 이를 수락하며 이날 제명 결정을 발표했다고 한다.
여권이 ‘보좌진 갑질 논란’이 제기됐던 강선우 의원 때와 비교해 조기 대응에 나선 것은 개인 투자자들의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은 이 대통령 취임 후 주가 상승으로 자신감을 얻었지만 정부의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적용 확대 방침에 투자 심리가 흔들리며 정책 수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도 이날 이 의원 의혹에 대해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진상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공평무사하게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자본시장법·금융실명법·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이 의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 법조인은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민주당에서 선도적으로 특검을 추진해야 ‘꼬리 자르기’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與, 대형 악재 조짐에… 초강경 ‘秋 카드’로 지지층 달래기
이춘석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폰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보도돼 차명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휴대폰은 보좌관 것이고, 차명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진 속 이 의원은 삼성 휴대폰으로 주가를 확인했는데, 이 의원의 보좌관은 평소 애플 휴대폰을 주로 사용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도대체 그날 주식 거래에 쓴 휴대전화는 누구 것인지도 전혀 해명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 다수는 이 의원의 주장에 대해 “해명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의혹이 불거진 당일 오후만 해도 “우선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 의원 해명이 나온 후로 방어가 쉽지 않다고 봤다는 것이다. 지지층 내에서도 여론이 악화했다. 원외 친명(親明)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6일 “이 의원의 차명 주식 투자 의혹을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국회 차원에서도 선출직 공직자의 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땐 이재명 후보의 후보실장, 대선 후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인공지능(AI) 정책 기획 등을 담당하는 경제2분과장을 맡았다. 이 의원이 차명 거래한 의혹이 제기된 네이버·LG CNS·카카오페이는 ‘1원=1코인’ 방식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로 불린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출원했고, LG CNS는 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안전하게 도입하자는 취지로 추진한 ‘프로젝트 한강’의 기술 총괄을 맡았다. 이 대통령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이 의원을 국정기획위에서 해촉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런 논란을 의식한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 의원이 내부 정보를 주식 투자에 이용했다면, 중대한 국기 문란 범죄 행위”라고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정기획위 위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국정 수혜주, 테마주를 선취매한 것이 없는지 주식 거래 내역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며 “유사 범죄가 없는지 특검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의 의혹을 수사하는 내용의 특검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야당에선 이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 조치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은 ‘제명 쇼’로 눈속임할 생각 말고 의원 제명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직 이 의원의 의원직 제명까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의원 징계를 담당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야권 관계자는 “윤리특위가 구성되더라도 민주당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날 이 의원이 맡았던 법사위원장에 추미애 의원을 지명했다고도 밝혔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하고 비상한 상황인 만큼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 가장 노련하고 검찰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추미애 의원께 위원장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추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맡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검찰 개혁으로 눈을 돌리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은 이춘석 위원장의 탈당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는 추미애 법사위원장 카드로 자신들만을 위한 ‘맘대로 독재국가’의 최전선을 구축하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