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춘석(4선·전북 익산갑) 의원이 본회의 도중 휴대폰을 이용해 보좌관 명의로 주식을 거래했다는 ‘차명 거래 의혹’이 제기돼 5일 법사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이 의원은 “휴대폰은 보좌관 것이고, 차명 거래를 한 적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이날 밤 민주당을 탈당했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는 이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앱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을 촬영해 5일 보도했다. 보유한 주식은 카카오페이 537주, 네이버 150주, LG CNS 420주 등으로, 5일 종가 기준 9700여 만원어치다. 이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 의원은 네이버 주식을 가격대별로 5주씩 분할 주문했고, 일부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신용 융자 방식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이춘석(위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들여다본 주식 거래 앱 화면. 소유주명에 이 의원의 이름이 아닌 보좌관 차모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주식 차명 거래 의혹이 일자 이 의원은 “보좌관의 휴대전화였고 차명 거래는 결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더팩트 제공·뉴스1

논란은 주식 계좌 소유자가 이 의원이 아니라 보좌관 차모씨임이 알려지면서 커졌다. 차씨는 더팩트에 “이 위원장은 주식 거래를 하지 않는다. 본인 휴대폰인 줄 알고 헷갈려 제 휴대폰을 들고 본회의장에 들어갔고, 거기서 주식 창을 잠시 열어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 달리 이 의원이 지난해 10월 7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차씨 명의의 주식 계좌 창을 보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찍혔던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 의원은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미르’ 주식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작년 5월과 12월 기준 국회의원 재산 신고에 따르면, 이 의원은 본인과 가족 명의로 보유한 주식이 없다고 밝혔다. 주식 차명 거래는 금융실명법에서 금지돼 있고,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야권 관계자는 “작년 4월 총선 당선 후 (공직선거법 공소시효인) 6개월 안에 주식 차명 보유 사실이 밝혀져 기소됐다면 당선 무효형이 선고될 수도 있었다”고 했다.

법사위원장이자 여당 4선 중진이었던 이 의원이 여권 내 고급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에서 사익을 취했다면 공직자 윤리 위반은 물론, 법으로 금지된 ‘내부자 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실장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보좌했고, 대선 후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인공지능(AI) 정책 등을 담당하는 경제2분과장을 맡았다.

특히 이 의원이 네이버 주식을 거래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지난 4일에는 네이버 주가가 장중 전일 대비 6% 이상 급등했었다. 과기정통부가 이날 오후 2시 ‘국가대표 인공지능(AI)’을 개발하겠다며 국내 기업 5곳을 발표했는데 네이버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의원 보좌관 명의 주식 계좌에 있던 LG CNS도 국가대표 AI 기업으로 발표됐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이 의원이 발표 내용을 몰랐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만약 이 의원이 국정기획위의 AI 담당 분과장으로서 관련 정보를 미리 듣고 공식 발표 전후에 해당 기업의 주식을 거래했다면, 자본시장법으로 금지된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행위가 된다.

여권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며 입법을 추진하는 상황에 이번 사태가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사건이 보도되자 당 윤리감찰단에 이 의원의 차명 주식 보유 의혹에 대한 긴급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정부의 주식 관련 세금 인상 방안에 대해 개인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여당 중진 의원 차명 거래 의혹이 나오자 빠르게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려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식 화면을 열어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타인 명의로 주식 계좌를 개설해서 차명 거래한 사실은 결코 없으며, 향후 당의 진상 조사 등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보좌관 휴대폰으로 왜 거래를 했나” “보좌관 휴대폰은 왜 갖고 있었나” “작년 10월 주식 거래 경위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밝혀질 것”이라고만 했다.

이 의원은 결국 이날 밤 다시 올린 입장문에서 “변명의 여지없이 제 잘못”이라며 “당 지도부와 당에 더 이상 부담 드릴 수는 없다고 판단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 사임서도 제출했다”고 했다. 정청래 대표는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송구스럽고, 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차명 거래) 의혹에 대한 진상은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민주당 의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했다고 권향엽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이 의원을 입건했다. 주식 계좌 명의자인 이 의원의 보좌관 차모씨는 방조 혐의로 입건됐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도 고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