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KBS·MBC 등 공영방송의 기존 이사진과 사장을 전원 교체하는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재계가 우려하고 있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더 센’ 2차 상법 개정안 등의 처리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처리에 반발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주당은 190석에 달하는 범여권의 과반 이상 의석수로 8월 임시국회 내 쟁점 법안 전부를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비쟁점 법안들의 표결 처리 후 KBS 이사진 구성을 바꾸는 방송법을 가장 먼저 상정했다. “언론·사법·검찰 개혁 등 3대 입법을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이뤄내겠다”고 한 정청래 민주당 신임 대표의 의지가 강해 ‘당대표 1호 법안’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은 무제한 토론에서 “민주당 성향 시민 단체, 민주노총에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언론 개혁, 방송 개혁인가”라고 했다.
◇방송 3법·反기업법… 與, 브레이크 없는 ‘입법 독주’ 시작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먼저, 이어서 방송 3법과 노란봉투법을 상정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을 예고하자, 민주당은 비쟁점 법안을 먼저 처리한 뒤 방송 3법 중 KBS 이사진 구성을 바꾸는 방송법을 가장 먼저 올렸다. 그 뒤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으로 순서를 바꿨다. 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새 당대표가 ‘언론 개혁’ 의지가 강해 방송법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송 3법은 법 시행 3개월 안에 KBS·MBC·EBS의 이사진·경영진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새 이사진 임기는 최대 6년으로 규정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친여 이사진 구성이 계속되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통해 민주당의 법안 처리 저지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초 채상병특검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의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한 지 1년 만이다.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은 이날 첫 번째 반대 토론자로 나서 “‘민주당 방송’ ‘민주노총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비판했다. 방송사 앵커 출신인 신 의원은 “‘낙하산 사장’이 싫다는 분들이 공수부대를 대한민국 방송사에 떼로 투입시키는 법”이라며 “국가가 방송국의 경영에 대해 이런 식으로 관여하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언론을 뭘로 보고, 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법안을 갖고 언론을 수족으로 삼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신 의원의 반대 토론이 시작되자 여야 의원들은 서로 고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대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여당은 나머지 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도 8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21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민주당은 현행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지 24시간이 되는 5일 오후 4시쯤 국민의힘의 토론을 강제 종결하고 방송법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이후 MBC와 관련된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이 또다시 무제한 토론에 나설 예정이지만, 이 토론은 5일 자정에 7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으로 종료된다. 남은 법안은 오는 21일 8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민주당은 이후 본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24시간마다 무력화하고 방송 2법과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을 하나씩 ‘살라미’ 전략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압도적 의석 차이로 “8월 임시국회 내 쟁점 법안을 모조리 처리하겠다”는 민주당의 독주를 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당 의원총회에서 “소수 야당인 국민의힘에 민주당의 ‘입법 내란’을 물리적으로 막을 힘은 없다”며 “최대한 악법의 강행 처리 시한을 늦추고, 국민께 악법의 문제를 소상히 알리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정청래호 출범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입법 폭주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지난 21대 국회 때부터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해 왔다.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쟁점 법안은 지난 정부 시절 국회에서 처리됐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폐기됐던 것들이다.
다만 민주당이 이날 재계가 반대하는 노란봉투법이나 상법이 아닌 방송법을 먼저 상정한 것을 두고 “반발하는 여론을 달래기 위해 시간 벌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우원식 의장은 이날 비공개 여야 원내대표와의 오찬 뒤 “방송법을 우선 안건으로 처리하자는 여야 대표단의 공통된 건의”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청래 신임 대표의 언론 개혁 의지가 강한 것도 영향이 있지만 최근 주식 양도세 논란 등과 함께 주가 폭락의 원인으로 노란봉투법이 지목되면서 미룬 측면도 있다”고 했다. 입법 강행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을 의식해 뒤로 미루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과 상법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해외 투기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을 어렵게 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