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더 센’ 2차 상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했다. 기업 총수들이 나서 정부를 총력 지원한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지 하루 만에 국내 경영 활동을 옥죄는 법안들이 줄줄이 처리된 것이다. 재계는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의 기존 이사진과 사장을 전원 교체하는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도 이날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 문턱을 넘었다. 민주당은 오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협치를 무시한 입법 독재”라며 “민주주의와 경제를 다 버린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래픽=양진경

◇법안 밀어붙인 與 “경영계, 6개월 줄테니 백방으로 뛰라”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처리에 반발하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표결에 불참했고, 상법 개정안엔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오는 4일 본회의에서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의석 차이로 다음날인 5일부터 시작하는 8월 임시 국회 내 법안 통과를 막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항의하는 국민의힘 -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춘석 위원장이 방송 3법에 대한 반대 토론을 종료시키자,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박형수(가운데) 의원이 항의하고 있다. 이날 방송 3법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주도로 가결됐다. /김지호 기자

노란봉투법은 민노총 등 노동계가 줄곧 요구해 온 내용이 담겼다. 이 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도 사용자로 취급될 소지를 뒀다. 또 종전에는 근로자가 임금이나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과 관련해서만 파업 등 쟁의 행위를 할 수 있었지만, 법안은 사실상 경영진 결정 대부분을 쟁의 소재로 삼을 수 있게 했다. 사용자가 노조 활동으로 손해를 입더라도 노조나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노조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 “원청 등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유럽상의에서도 우려를 표하며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재계 우려 등을 반영해 당초 법 시행 후 유예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양대 노총은 총력 투쟁을 예고하고 “개악”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노란봉투법은 1일 법사위에서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의 법사위 처리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경영계가 지금까지 ‘통과 안 될 것이니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해 (민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안 하다가, 정권이 바뀌니까 이제 와서 허둥지둥하는 것 아니냐”며 “경영계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6개월 유예 기간을 줄 테니까 본인들이 백방으로 뛰어라”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건 상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야당에선 “경영계더러 6개월간 민주당에 알아서 잘 보여서 ‘살길’을 찾으라는 이야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2차 상법 개정안도 야당 반대 속에 통과됐다. 이 법안은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주 내용이다. 자산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 의결권을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된다. 예를 들어 이사 2명을 선출한다면 주주들이 1주당 2표를 행사할 수 있고, 소액주주들이 이 2표를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원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소액주주도 원하는 후보를 이사로 올릴 수 있게 되지만, 자칫 해외 투기 자본 등에 경영권이 장악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여야가 지난달 3일 본회의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상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는데, 민주당이 약 한 달 만에 더 센 상법 개정안을 합의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상법 1차 개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 무슨 분석이 있고 어떤 결과가 나왔나”라며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다.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공영방송인 KBS·MBC·EBS의 이사 추천 권한을 정치권뿐 아니라 임직원과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법조인 단체 등에 나눠주는 것이 핵심이다. 임직원과 방송 관련 학회, 변호사 단체는 민주노총 언론노조와 민변 등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회 추천 이사 중 민주당 몫을 포함하면 범여권이 공영방송 이사진 다수를 상시적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공영방송 사장 후보를 100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사장 후보 국민 추천 위원회’에서 뽑도록 했는데 이 역시 사실상 임직원 단체나 노조에 좌우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 법이 통과되면 새로 선출되는 이사진 임기는 최대 6년으로 규정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친여 이사진 구성이 계속되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겨냥해 “공산당이냐”며 “이럴 거면 국회는 왜 있냐”고 반발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안법),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공항시설법 개정안 등은 합의 처리했다. 양곡관리법은 국내 쌀 수요량을 초과한 생산량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정부가 초과분을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농안법은 쌀을 비롯한 주요 농수산물 시장 가격이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 일부를 보전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들 법안을 반대했던 야당은 정부의 보완 약속을 수용해 합의 처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