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9.49포인트(1.58%) 오른 3183.23에 마감했다./박성원 기자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商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이 법을 개정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추가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공약을 달성하고, 부동산에 몰린 투자를 주식 등 금융 투자로 돌리려면 더 센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경영권 침해와 소송 남발을 우려하지만, 1400만 개미 투자자 여론이 나쁘지 않아 정부·여당에 유리하다는 계산도 깔렸다.

민주당은 11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법 개정 공청회를 연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서 빠진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통과시키기 전 경제계 의견을 듣는다는 취지다.

민주당 지도부는 집중투표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7일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상법이) 아직 좀 부족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선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이 지난 9일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가에 호재(好材)로 작용한다.

경제계는 민주당의 상법 연쇄 개정에 대해 “정치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등이 추가되면, 단기 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에 경영권을 위협당하거나 영업 비밀 등 중요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개미는 우리 편“… 與, 기업 아우성에도 ‘상법 개정 시즌2’

그래픽=이철원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에 포함하려는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여러 표를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민주당은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 이 조항을 적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조항도 있는데, 대규모 상장회사에 적용해 대주주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이사, 감사위원 선임이 쉬워진다.

재계 관계자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고, 연구 개발(R&D)이나 대규모 시설 투자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경제 단체 관계자는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는 의무화한 국가가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계 등에선 민주당이 11일 경제계의 의견 수렴 차원에서 공청회를 열지만 “이번에도 경제계 얘기를 듣는 시늉만 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앞서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전에도 재계와 간담회를 가졌는데, 재계의 우려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또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일 경우 1년 안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향후 취득하는 자사주뿐 아니라, 현재 보유한 자사주도 1년 내에 소각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상장회사 자사주에 대한 원칙적 소각 제도화를 검토하겠다”고 공약했다.

기업은 자사주를 소각해 주당 가치를 높이는 주주 환원책이나 임직원에게 나눠주는 보상책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겨 대주주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해 왔고, 이 때문에 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과도한 자사주를 보유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에서 “실제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상장사는 216곳이며, 40%를 넘는 기업도 4곳이나 있어 자사주가 과도하게 축적·남용되고 있다”고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반적 주가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반 주주와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자본 시장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진다”며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주 권리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해외처럼 ‘차등 의결권(한 주당 의결권 복수 부여)’ ‘포이즌필(시가보다 싸게 지분 매입 권리 부여)’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같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연이어 상법 개정에 나선 것은 국내 증시가 활황을 보이며 지지율에도 긍정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대선 한 달 전인 지난 5월 초 코스피는 2500대였는데, 이 대통령 취임 한 달 뒤이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 3일 코스피는 3116으로 600포인트 이상 뛰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잠재우고 국민 투자의 눈을 주식 등 금융시장으로 돌리려면 국내 증시 활성화가 필수라는 생각도 강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국내 증시 활성화’ ‘부동산 가격 안정’에 성공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 등에 대한 소송이 늘어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경영상 판단과 관련한 배임죄 보완·폐지 등의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기류는 아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미 경영상 판단에 따른 배임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많다”며 “급한 것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집중투표제·자사주 소각

집중투표제: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고,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자사주 소각: 회사 자금으로 사들인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을 회계 장부에서 삭제(소각)하는 행위. 유통되는 주식의 양이 줄어 1주당 가치가 올라간다는 기대감에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