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방송 3법’ 개정안이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부칙을 통해 방송 3법 시행 후 3개월 내에 KBS·MBC·EBS 등 방송사의 새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기존 사장과 이사진을 전원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단과의 만찬에서 방송 3법 개정안에 대해 “그동안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 이견이 있다는 식으로 나왔는데 그렇지 않고 내 뜻과 같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이 전했다.
과방위는 이날 국민의힘 일부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방송 3법 개정안(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주도해 찬성 11인, 반대 3인으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KBS 이사는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확대되고, MBC와 EBS는 각각 9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난다. 이 중 국회가 추천하는 이사는 KBS 6명, MBC·EBS는 각각 5명이다. 그 외 시청자위원회, 언론·미디어 학계, 임직원, 법조계, 교육계 등에서 추천을 받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각종 독소 조항을 넣어 공영방송 이사회를 친민주당 인사로 교체하고 궁극적으로 사장까지 바꿔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방송 3법은 ‘실용’을 앞세워 온 이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주문한 쟁점 법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만찬 언급을 두고 여권에서는 “지지층과 친여 매체를 의식해 기존 입장을 바꾼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방송 3법은 본회의를 두 번 통과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으로, 이재명 정부 들어 민주당이 다시 추진 중이다. 이날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 3법 개정안에는 지상파는 물론 민간 방송인 종편, 보도 전문 채널도 노조와 회사가 5명씩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편성위원회는 방송사의 편성을 책임지는 사내 기구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편성위원회를 설치하지 않거나 편성 규약을 지키지 않는 방송사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고 재허가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국민의힘은 “방송 경영, 방송 편성이 과연 노조가 주도해서 책임질 일인가”라고 했다.
개정안에는 공영방송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위원들은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보도 책임자 임명 시 사내 동의를 받도록 하는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도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통령 관저에서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단과 만찬을 한 자리에서 방송 3법 개정안에 대해 “내 뜻과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게 당내 강경파가 방송 3법을 밀어붙인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 대통령이 여당과 이견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만찬에 참석한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당 원내지도부, 당 정책위의장, 대통령실 홍보수석실과 충분히 조율했다”며 “도대체 누가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거냐”고 했다.
앞서 지난달 이 대통령은 민주당이 방송 3법을 강행 처리하려고 하자, 유보해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생과 크게 관련 없는 개혁 과제를 야당 반발 속에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도 자신이 민주당에 방송법 처리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에도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방송법에 대해 “권력의 구조와 관계없이, 혹은 누가 집권을 하느냐와 관계없이 국민에게 대중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송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방송 3법과는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날 방송 3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이 대통령은 여당 의원과의 만찬에서 자신의 뜻과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당내 강경파와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취임 후 노란봉투법, 양곡법 등에 대해 속도 조절을 주문하며 실용주의 기조를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에 호응한 첫 사례라는 해석도 있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이 대통령이 ‘굿캅(Good Cop)’, 민주당이 ‘배드캅(Bad Cop)’ 역할 분담을 한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그간 사법 개혁이나 국무위원 탄핵 등 야권 반발이 심한 현안에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정적으로 강경파 손을 들어주는 식의 모습을 보여왔다.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 3법은 법안 체계·자구 심사를 담당하는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이날부터 시작한 7월 임시국회 내에 방송 3법을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방송 3법을 포함해 중점 법안을 가능한 한 7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목표”라며 “절차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