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송언석(가운데)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27일 국회 본회의 도중 퇴장해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상임위원장 선출을 규탄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선출했다./남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등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쟁점 법안들을 다음 달 4일까지인 6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법제사법위원장을 이춘석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법안 심사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의 위원장을 자기 당 의원으로 선출해 각종 법안을 브레이크 없이 일방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야권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국회 시정 연설에서 ‘협치’를 시사한 지 하루 만에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시작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은 전(前) 정부에서 재의 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된 법안 13건, 민주당이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안 11건, 여야의 대선 공통 공약 16건 등 40건을 6월 임시 국회 중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전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들은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으로, 여야는 물론 사회 각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법안들이다.

그래픽=박상훈

이 가운데 상법 개정안은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일 먼저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코스피 5000 특위’를 발족하면서 처리에 속도를 내는 법안이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경제계는 “잘못된 경영 전략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는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되고, 주가가 낮은 중견·중소기업들은 소수 지분을 확보한 사모펀드 등의 경영권 공격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영상 판단에 따른 배임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게 판례”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더 센 상법 개정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내에선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상법 개정안에 담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1표’ 원칙이 아니라 선임하려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 지지하는 이사 후보 1인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재계에선 “해외 투기 세력들의 입맛에 맞는 이사 선임이 가능해져, 경영 간섭이 잦아지고 기업의 장기 계획 수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한 노동계의 ‘청구서’라고 불리는 노란봉투법 처리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도 역대 최초로 민노총 위원장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노란봉투법 추진을 시사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기업이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직접적인 근로 계약을 맺지 않았는데도 하청 노조가 원청과도 단체 교섭을 하고 파업할 수 있게 돼 있다. 대기업들의 경우 수백 곳 넘는 하청 업체 노조의 파업으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쌀값이 폭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는 양곡관리법이나 밀·콩 등 작물의 판매 가격이 기준에 못 미치면 정부가 차액을 지원하는 농수산물 유통·가격 안정법 등 농업 4법 등도 농민 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법안이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국가 재정 부담이 커 도입하지 못한 법안들이지만 민주당은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해왔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만나 양곡법을 8~9월쯤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 청문 시한인 29일까지 국민의힘이 인준 동의를 하지 않으면,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의 인준안을 바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무총리 인준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본회의 통과가 가능하다. 167석의 민주당만으로도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과 여당이 말로만 협치를 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다수당의 횡포, 법의 지배가 아니라 힘의 지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