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퇴장하며 국민의힘 의원석으로 가자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눴다. 일부 의원은 김민석 총리 후보자 인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남강호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26일 첫 국회 연설은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나 항의 시위 없이 진행됐다. 17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회의장을 들고날 때를 포함해 이 대통령은 이날 15번 박수를 받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이 대통령 “이제 제가 을(乙), 잘 부탁드린다”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은 202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국회를 찾았을 때 본회의장 밖에서 팻말 시위를 했고, 일부 의원은 악수를 청하는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거나 등을 돌리기도 했다. 2024년 11월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야당은 정부 추경안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날 시정연설에선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5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푸른 바탕에 붉은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왼쪽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착용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전 국회 접견실에서 10여 분간 우원식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과 사전 환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정부라는 것이 직진하는 집행 기관”이라며 국회의 견제와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제가 이제 을(乙)이라 각별히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50%를 넘는 것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고 김 위원장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쯤 민주당 의원들의 박수 속에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일어났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17분간 연설할 때도 박수는 여당 의원들에게서만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감사합니다.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응이 없는데 이러면 좀 쑥스러우니까”라며 원고에 없던 말을 했다. 연설 중간 “우리 국민의힘 의원님들 어려운 자리 함께해주신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는 길에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악수하며 어깨를 툭 쳤다. 이 대통령과 권 의원은 중앙대 동문이다. 권 의원은 이날 이 대통령에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은 안 된다”고 했다/남강호기자

이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 민주당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쳤다. 일부는 휴대전화로 이 대통령의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 대통령이 퇴장할 때까지 선 채로 자리를 지켰다. 이 대통령은 퇴장하면서 국민의힘 의원석을 찾아 의원들과 악수했다. 이 대통령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권 의원의 오른쪽 팔을 가볍게 치기도 했다. 권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총리 지명은 안 된다고 두 번 이야기하니까 ‘알았다’고 하고 (팔을) 툭 치고 가더라”고 했다. 두 사람은 중앙대 법대 동문이다. 나경원 의원 등 일부 야당 중진 의원도 이 대통령에게 총리 지명을 철회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이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송미령) 장관 유임을 철회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누가 먼저 대통령과 악수하나” 당대표 후보들 경쟁

이날 이 대통령의 첫 국회 연설 현장에선 ‘악수 경쟁’도 벌어졌다. 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은 국회 건물 밖에서 기다리다 차에서 내린 이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고, 이 장면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박찬대 의원은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한 이 대통령과 악수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가장 먼저 인사한 사람은 박찬대’라는 글과 함께 동영상을 공개했다.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던 이 대통령은 박 의원과 정 의원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두 사람 손을 잡게 하고 자신의 손까지 올려 ‘3인 악수’를 하기도 했다.

국회 연설을 마친 이 대통령은 경호처장 등 소수의 참모만 대동하고 용산 대통령실 인근 대구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관계자,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골목 상권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민생이 산다’고 강조하며 경기(景氣)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