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4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 회의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 1일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면소(免訴·법 조항 폐지로 처벌할 수 없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와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국민 동의를 얻었다’는 명분을 내걸어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사법부를 압박해 15일로 잡혔던 이 후보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대선 이후로 미뤘는데, 민주당 계획대로면 이 후보의 선거법 재판 리스크는 대선 직후 사라진다. ‘대통령 거부권’ 등 민주당 입법 폭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 조희대 대법원장을 수사 대상으로 한 특검법도 상정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것이 대선 개입이자 사법 농단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불참했지만,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청문회 개최도 강행했다.
이 후보는 이날 경남 창원에서 “내란 수괴뿐만 아니라 지금도 숨어서 끊임없이 2·3차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다 찾아내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면서 “그리고 그 법정은 깨끗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발언에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는 쓸어버리겠다는 협박 아니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에서 줄곧 반대표를 던졌지만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데, 이재명 한 사람은 예외” “이재명 방탄을 위해 선거 제도를 다 망치려 든다”고 했다.
◇‘특정인 면소법’ ‘사법부 장악법’ 민주당, 집권 땐 바로 처리 태세
민주당은 지난 1일 대법원에서 이재명 후보가 불리한 판결을 받자, 하루 만인 2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의 골자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 요건을 설명하는 250조 1항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선거 당선을 목적으로 출생지나 가족 관계, 신분, 직업, 경력, 재산, 행위, 소속 단체 등에 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돼있다. 이 후보가 ‘김문기 모른다’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이다’ 등의 발언으로 기소된 혐의가 바로 이 조항의 ‘행위’ 항목으로 인한 것이어서, 민주당이 이를 삭제한 것이다. 이 후보를 위한 노골적인 ‘위인설법’인 셈이다.
민주당은 14일 국회 법사위에서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대선 직후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당내에서는 선거 분위기를 살펴 대선 이전이라도 본회의를 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언제든 강행 처리할 수 있도록 ‘장전’을 마친 것이다.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은 15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민주당이 재판을 강행할 경우 판사 탄핵에 나설 수 있다고 재판부를 압박하자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된 상태다. 대선을 전후해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후보를 처벌할 법 규정이 사라지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받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대선을 크게 이기면 선거법 개정에 따른 ‘셀프 사면’ 논란도 피해 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국민이 이 후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다 지켜봐 왔다”며 “그것에 대한 최종 판단을 대선에서 표로 내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 외에 각종 ‘법원 옥죄기’용 법안들도 잇따라 상정했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조희대 특검법’을 상정하면서 “법사위원장 임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박균택 의원이 “조 대법원장은 사퇴 의향이 없냐”고 묻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판사가) 수사 대상으로 전락하면 자유롭게 소신껏 권력에 대항해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올렸다.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이 귀족 법관이냐”고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다음 대통령은 대법원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었던 ‘재판’을 새로 포함시키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도 함께 올렸다.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헌재에 헌법소원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날 상정된 법안들은 모두 이번 달에 발의돼 국회법이 규정한 ‘상임위 상정 전 숙려 기간 15~20일’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표결로 상정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이 법안들을 전부 소위에 회부했고 다음 전체 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공격도 시작했다. 지 부장이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 부장이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을 한 뒤로 ‘내란 공범’이라 공격해 왔다.
김용민 의원은 “지 부장판사가 1인당 100만~200만원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돈을 낸 적이 없다는 아주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고 했다. 천대엽 처장이 “금시초문이다. 확인해 보겠다”고 하자, 김 의원은 “재판부터 직무 배제하고 당장 감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구체적인 증거도 밝히지 않고 이런 식으로 ‘좌표 찍기’ 의혹 제기를 하는 것은 예전에 베네수엘라에서 법관들을 압박하고 겁박할 때 쓰던 수법”이라며 “이재명 후보를 감싸느라 민주당이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정청래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제출한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손에 들고 “오만함이 참 대단하다”며 “보통 불출석 사유서는 A4 용지 두 장 안팎인데 대법관들이 마치 짠 듯이 3줄, 4줄, 5줄짜리 복사기로 복사해 붙인 듯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사법 농단, 사법 테러는 대법원이 아니라 민주당이 하고 있다”고 했다. 송석준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이 “유권자를 속이는 ‘묻지 마 이재명 당선법’”이라며 “거짓말이 판치는 선거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성명서에서 대법관 증원 시도에 대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대법관을 새로 임명해 사법부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것”이라며 “대법관 증원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왜 박근혜·윤석열 정부 때는 주장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 피고인에게 흠집을 냈다는 이유로 대법관들에게 망신 주기 보복을 가하는 것은 엽기적인 인격 살인”이라고 했다.